[그 죄에서 떠나라]
왕하 10:28~26
여러분, 절대 떠나지 못하는 그 죄가 있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정관사를 붙여서 그 죄라고 하는데, 예후가 철저히 개혁했지만 떠나지 못하는 그 죄가 있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각자가 매여 있는 그 죄에서 떠나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 금송아지 숭배의 죄가 있습니다. (돈 신의 죄)
예후 통치 기간 28년 중 동안 1년 동안 바알 신당을 불사르고 헐어서 변소로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아합의 집을 멸하고 바알의 집을 멸한 것은 엄청난 업적이지만, 남은 27년 동안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성경에 여로보암의 아버지 느밧의 이름이 기록된 것은 그 죄가 느밧에게서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죄는 벧엘과 단 사이에 있는 금송아지를 섬기는 죄인데,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남유다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예배드리는 것을 막기 위해 벧엘에 금송아지를 세워놓고 '하나님이라고 생각하고 기도하라!'고 한 우상 숭배의 죄입니다. 바알을 척결한 예후는 하나님께로 돌이킬 법도 한데, 특별대우와 특별 예복이 필요 없을 정도로 존재 자체가 특별했기에 돌아오지 않습니다. 벧엘과 단을 지켜 현상 유지를 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하기에 북이스라엘이 남유다로 복속이 될까 봐 금송아지를 불사르고 헐지 못합니다. 내가 조금이라도 높아지면 바로 하나님의 율례와 명령을 지키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큐티를 하면서 말씀의 인도함을 따라가야 합니다. 북이스라엘의 원죄가 그 죄이고 우리의 죄인데, 우리 힘으로는 그 죄에서 돌이킬 수 없습니다. 성령의 도움이 있어야 금송아지 숭배의 죄에서 떠날 수 있습니다.
둘째, '잘~'보다 '전심으로'가 중요합니다. (열심의 죄)
하나님은 예후가 아합의 집을 멀리하고 바알의 집을 멸한 그 일이 진실하고 정직했다고 칭찬하십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을 전심으로 지켜 행하지 않았다고 하십니다. 열심과 전심은 다릅니다. 열심은 히브리어로, 기복적으로 소유와 관련되어 있는데, 그 뿌리가 욕심이고, 금송아지 숭배하는 그 죄입니다. 그러나 전심은 온전한 마음, 나뉘지 않는 마음, 집중된 있는 마음,두 주인을 섬기지 않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바알이나 금송아지를 섬기는 것은 특별한 열심일 수는 있지만 결코 전심은 아닙니다. 우리는 잘하기 위해서 열심을 내지만, 전심은 잘하기 위해서 생기는 마음이 아닙니다. 열심히 하고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전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입니다. 열심의 모델이 예후라면, 전심의 모델은 레갑이 있습니다. 불완전한 종교개혁을 한 예후의 모습을 지켜본 레갑 족속의 조상인 여호나답은 바알 숭배가 일시적으로 중단되었지만, 이스라엘의 근본적인 회복이 아직 멀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리고엘리야와 엘리사의 사역에 적극 동참하지 못하고 예후와 인본적인 열심을 내었던 자기 죄악을 회개하고 후손들이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도록 명령합니다.말씀은 히브리어로 다바르인데, 광야는 거기에 전치사 미가 추가되어 미드바르입니다. 그러니까 광야는 말씀으로부터라는 뜻으로 말씀이 나오고 말씀이 들리는 곳이 광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지켜 행하는 전심은 성령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행하는 은혜입니다. 전심으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은 우리의 힘과 능력이 아니라 오직 성령이 임하셔야 할 수 있습니다.
셋째, 아무리 큰 업적도 그 죄를 가릴 수 없습니다. (업적의 죄)
본문 32-36절을 보면 열심이던 예후에게 즉시 심판이 임하는데, 아합 왕조 때는 간헐적으로 공격하던 아람이 이제는 이스라엘 모든 영토에서 대대적인 침략을 시작하여 가장 비옥한 땅을 다 빼앗기고 결국 요단 동편 땅을 전부 빼앗깁니다. 요단 동편 땅은 르우벤 갓 무낫세반 지파가 여호수아 시절에 달라고 했던 땅인데, 내 눈에 보기 좋은 땅은 남의 눈에도 똑같이 좋아 보입니다. 잘생긴 남자 여자가 좋아 결혼했어도 조금만 일이 생기면 이혼한다고 하니, 여러분은 얼굴의 광야를 선택하시길 바랍니다. 직업도 남이 안 가는 곳을 선택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돈과 외모를 따지면 결과적으로 예후처럼 됩니다. 광야를 선택하는 것이 축복입니다. 예후는 위대한 업적을 많이 남겼지만, 아무리 대단한 업적도 그의 수치를 가릴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레갑 족속은 광야에서 비천하고 청빈한 삶이 그들을 보호하는 수단이 되어 BC 722년 북이스라엘이 멸망할 때에도 BC586년 남유다가 멸망 때에도 살아남았습니다. 우리가 더럽고 연약한 인생이지만, 죄의 자리를 떠나 하나님께서 맡기신 거룩한 사명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성령과 함께 그 죄에서 떠나는 것이 이 땅에서뿐 아니라 천국에서 영원히 빛날 진정한 업적인 줄 믿습니다.
성령이 내 영을 다시 태어나게 하신 곳이 광야라고 고백하신 집사님들의 나눔입니다.
한 집사님은 혼자서 두 분 다 치매인 어머니와 아버지를 돌보며 직장까지 잃어 죽을 지경이라고 합니다. 또 한 집사님은 빚만 늘어나는 상황에서 아내가 아르바이트라도 하라고 하니 너무 서운했는데, 새벽 알바를 구해 한 달 80만 원 벌겠다고 하십니다. 다른 집사님은 도박과 마약중독에서 사람 구실 못 하고 살았는데, 공동체에 와서 새사람이 되었고, 저의 간증을 통해서 저와 같은 한 생명을 살리는 한 사람이 되기를 소망한다고 나누셨습니다. 이렇게 광야를 통과하는 나눔들이 매주 수없이 올라옵니다.
여러분, 그 죄에서 떠나라는 금송아지 숭배에서 떠나고, 잘하는 것보다 전심으로가 중요하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내가 열심히 한 업적으로 그 죄를 가릴 수 없습니다. 우리들교회 현수막에 '한 사람이 나라입니다.' 문구를 붙였습니다. 이렇게 모두가 광야를 지나며 함께 모여 살아나는 것이 진짜 교회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광야를 지나며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는 성도님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