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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를 멸시하면서까지 이집트의 고기를 구하다가 그것으로 진노의 형벌을 받은 일이 있습니까?
지난 주 금요일에 재활의학과 의사들과 치료사들이 함께 하는 환자 컨퍼런스가 있었습니다.
제 환자가 대상자였는데 저는 연하치료 담당인지라 작업치료 담당자인 후배가 일괄 발표하였습니다.
다른 팀과 함께 하는 자리이므로적절한 표현과 뉘앙스가 매우 중요했습니다.
말 한마디를 잘못하면 좋아져도 좋아지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고, 말 한 마디를 잘 하면 조금 좋아져도 많이 좋아진 것처럼 느껴지게 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별로 좋아지지 않았는데 좋아진 것처럼 과장되게 말하는 치료사를 싫어했습니다.
대신 저는 최대한 객관적으로 환자가 좋아진 것에 대해 말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발표자는 후배였는데 제가 써준 부분을 자기 나름 변형하며 '여전히 ~한 상태입니다.'를 반복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환자에게 추후 치료로 아이 패드의 사용을 제안하였는데, 이미 타 치료 파트에서는 아이 패드를 적용하여 치료한 것을 발표하였습니다.
저는 속으로 ‘연하 치료는 나름 좋아졌다고, 너나 잘 하지 왜 내 부분을 변형해서 발표한 거야?’ 생각하며 짜증이 났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탐욕에 빠져 여호와를 멸시하면서까지 이집트의 고기를 구하면 하나님은 그 고기를 주되 토할 때까지 줌으로 심판하신다고 하십니다.
그 고기로 진노의 형벌을 받아야만 그 냄새조차 싫어하면서 다시 하나님의 구원을 사모하게 된다고 하십니다.
업무에 잘 적응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던 저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업무가 적응한 것에 대해서는 벌써 감사를 잊고
후배가 이렇게 한 것이 화가 난다며 투덜대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태가 토할 것 같은 상황이고, 그 자체로 진노의 형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그 환자에 대해 다시 점검하다가 저의 여러 가지 에러가 발견되었습니다.
일단 제가 치료 기록을 성실하게 하지 않았다는 것 그러니까 미묘한 변화를 추가적으로 기입하지 않았으니 후배가 제 기록을 보고 그렇게 보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현재 병실에서의 식이 단계를 잘못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기록을 제대로 해 놓지 않고서는 혼자 환자가 좋아졌다고 하고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제 마음을 알 리가 없는 후배는 웃으며 오늘도 저에게 깍듯이 인사했는데 저는 혼자서 부끄러웠습니다.
적용으로 여호와를 멸시하면서까지 이집트의 고기를 구한 저의 죄, 즉 자기 계발해서 꼭 성공하고 싶었던 저의 죄를 회개하겠습니다.
제 손으로 자기 계발하며 자기 의를 쌓지 않기 위해 자기 계발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