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29일 금요일
사사기 10:1-5
“일어나서”
최저임금이 노사문제의 한 축으로 등장했다. 어느 한손을 들어주기에는 양쪽 모두의 사정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그만큼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양상이다. 소외되고 그늘진 사회를 바로 세우려는 시도이기에 먹고 살기에는 넉넉한 나라가 되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분단 70년이라는 아픈 역사도 오늘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겠다. 단군이래로 이만큼 경제적 부요를 누린 적이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행복지수는 OECD 국가 중 최하위에서 맴돌고 있다고 한다.
국지전은 간혹 벌어지지만 휴전 후, 전쟁이 없는 60년의 세월은 태평성대라고 말할만하다.
아비멜렉의 뒤를 이어서 이스라엘을 다스렸던 돌라의 시대가 그랬고 그 후에 길르앗 사람 야일이 일어나서 다스렸던 이십 이년 동안이 그랬다.
아버지는 왕이시라는 이름의 뜻을 가졌던 ‘아비멜렉’과는 달리 ‘돌라’는 지렁이라는 뜻을 갖고 있었다. 힘의 균형이 깨진 과도기였다. 혼란의 시기에 하나님께서는 ‘돌라’라는 극히 평범한 사람을 일으키셨다. 야망의 시대가 지나갔다. 그 자리에 ‘벌레 같은 인생’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는 일하신다는 극과 극을 대조시키신다.
스스로 왕이 되고자 한 아비멜렉은 삼년의 권세를 누렸으나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그러나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는 어느 누가 사사가 되어도 평화를 누릴 수 있음을 다섯 절의 짧은 말씀에서 큰 목소리로 들려주신다.
그리고 태평성대가 계속되는 40여년의 시간동안 그들은 누릴 줄만 알았다. 부를 축적하고 세습하는 일에는 열심히 있었으나 신앙의 대물림에는 소홀하였다.
“그에게 아들 삼십 명이 있어 어린 나귀 삼십을 탔고 성읍 삼십을 가졌는데 그 성읍들은 길르앗 땅에 있고 오늘까지 하봇야일이라 부르더라.” 사사기 10:4
지금으로 말하면 8학군에 거주하면서 벤츠 30대를 굴리는 호사를 누렸다는 말이다. 30개의 성읍을 가졌다는 것은 길르앗 땅 전체가 야일의 소유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부의 축적은 하나님께서 희년제도를 만드신 법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평균케 하시는 사랑의 법에 정면으로 위배된 행위였다.
분단 70년 종전 65년의 세월 동안 전 세계 유래가 없는 경제적 부흥을 이 땅에 허락하셨다. 교회적으로도 천만의 성도를 자랑하는 한국교회이지만 영적으로는 쇠퇴의 길로 들어선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일용할 양식을 구할 필요가 없는 시대를 살면서 아모스의 말씀을 기억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쓰러지리라” 아모스 8:1-13
기독교 TV를 틀면 여기저기서 유명한 목사들의 설교를 들을 수 있지만 정작 말씀대로 사는 사람들은 희귀한 시대이다. 바닷물은 6%의 소금으로도 청정하다고 하는데 30%가 기독교인이라는 한국의 부패지수는 “지난 1월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2015년 국가별 부패인식지수에서 OECD 34개 회원국 중 체코공화국과 함께 공동 27위로 하위권에 머물렀다. OECD 가입국 중 한국보다 낮은 국가는 헝가리·터키·멕시코 등 6개국이었다.”
이로 분명해진 것은 한국성도들의 소금은 가짜라는 것이 분명해진 것이다. 성도들에게 빛을 요구하기에는 밤을 밝히는 휘황찬란한 가짜 빛이 너무도 강렬한 시대이다.
‘김영란 법’이 헌재의 합헌 결정으로 시끌시끌하다. 변호사 협회가 국민의 여망을 담지 못했다고 반대 성명을 발표하고, 이곳저곳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심각하다. 그만큼 지하경제의 규모가 우리 모두의 생각을 뛰어넘기 때문일 것이다.
분명한 것은 김영란 법이 맞기는 맞지만, 그대로 시행하기에는 한국경제가 너무 많이 부패했다는 것을 스스로 밝히는 아이러니이다.
돌라와 야일의 평화시대를 바라보면서 우리나라와 한국교회를 향하여 경종을 울리신다. 천만의 성도에 매달리지 말라. 말씀이 풍성하지만 거짓선지자들의 목소리는 아닌지를 돌아보라는 말씀이시다.
개탄과 질타가 세상 사람들의 목소리로 한국교회를 향하는 시대에 요시아 왕처럼 ‘하나님이 찾으시는 한 사람’이 되기를 소망하며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