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11일 월요일
사사기 4:1-11
“반드시”
“이르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가리라 그러나 네가 이번에 가는 길에서는 영광을 얻지 못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실 것임이니라 하고 드보라가 일어나 바락과 함께 게데스로 가니라” 사사기 4:9
이스라엘 역사상 최초로 여성정치지도자가 등장했다. 그의 이름은 드보라였다. 하나님께서 단행한 파격적인 인사였다. 당시 근동지방에서는 여자는 인구조사에서도 빠질 정도였고 법정에서 증인으로서 자격도 없었으니 여성에게는 인권이란 말은 사치에 불과했다. 남성우월주의의 세계에서 한 나라를 다스리는 최고 지도자가 여성이었다는 말은 어떤 의미였을까?
여호수아가 정복 당시에 불살라 버렸던 하솔이 150년이 지나 사사시대에 당당히 되살아났다. 철 병거 900대의 절대적인 군사적인 우위를 가지고 이스라엘을 20년간 학대했다고 했다. 가나안 땅 한 모퉁이에서 하솔이 군사적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문화에 동화되어 하나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홍해가 갈라지고 반석에서 물을 마셨으며 요단강이 멈추는 커다란 역사를 손수 체험했던 위대한 신앙유산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사들의 죽음 후에는 망각의 덫에 걸려 예전으로 되돌아가는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었다.
여기서 우리가 주복해야할 점은 신앙은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이다. 어제 내가 무엇을 했느냐보다, 오늘 내가 어떤 자세로 살아가고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계셨으므로 그가 산지 주민을 쫓아내었으나 골짜기의 주민들은 철 병거가 있으므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며” 사사기 1:19
하나님께서는 여자를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다. 여기서 등장하는 철 병거는 유다지파가 포기했던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나약한 여성을 통해서 철병거 900대를 무력화 시키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그렇다 모세가 위대했던 것이 아니었다. 지팡이가 능력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손에 붙들림을 받을 때, 위대한 것임을 명심하자. ‘드보라’의 이름이 ‘꿀벌’이라는 뜻을 가진 것처럼 그녀는 종려나무 아래서 재판을 진행했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였다.
그에 반해 ‘번개’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던 바락은 막강한 시스라의 철병거 앞에서 두려워했고 머뭇거렸다. 그를 책망하지 않았다. 드보라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그를 격려했다. 반드시 함께 가겠다고 약속하였고 함께 전쟁에 나가서 승리하게 된다. 비록 미숙한 신앙이었지만 히브리서 기자는 그의 이름을 당당히 믿음의 조상의 반열에 기록하고 있다.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히브리서 11:32
‘반드시’ 오늘도 함께 하시는 성령님과 함께 하루 나그네 길을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