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8일 금요일
사사기 3:1-11
“한 구원자를 세워”
사람에게 치명적인 약점 중 하나가 ‘망각’이라는 병이다.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가나안 땅에 심으셨다는 사실을 그들은 너무도 쉽게 잊어버렸다. 왜 내가 이 땅에 존재하는지 그 목적을 잃어버린 것이다. 가나안 정복전쟁이 전리품을 빼앗는 전쟁이 아니라 ‘죄’를 심판하시는 ‘헤렘’ 전쟁임을 가르치셨음에도 그들은 망각의 덫에 걸리고 말았다.
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속들에게 임차인으로서 ‘공의와 자비’라는 임대료를 기대하셨으나 그들은 끝내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렸고 무정한 땅으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이제 임차인의 권리를 행사하시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무려 400년 동안 기르셨다. 그리고 40년간 광야군사학교에서 제대로 사는 법을 가르치셨다. 일곱 날이면 들어갈 가나안 땅을 무려 40년간 뺑뺑이를 돌리시며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깨닫게 하셨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백성이 되게 하신 것이다.
문화라는 옷을 입고 횡행하는 음란과 자유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방종의 시대를 살아간다. 아닌 것을 ‘아니오’라고 외치지 못하고 소수자들의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동성애를 합법화하는 일에 장로라는 사람들이 동원되기도 한다.
한 세대가 가기도 전에 이 땅에 6.25를 모르는 세대들이 등장했다. 아무리 가르쳐도 저들은 알지 못한다. 이스라엘이 그랬다. 전쟁이 그치고 평화의 시대를 누리기만 했지 그 평화가 어떻게 주어졌는지를 그들은 잊어버렸다.
하나님께서는 40년 광야생활 동안 옷과 신을 해어지지 않게 하셨다. 그들은 동일한 조건에서 평등한 세상을 살았다. 메마른 땅에서 살던 자들이 풍요의 땅에 들어서자 그들의 시야에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사라졌다. 그리고 정착민의 생활이 시작되면서 그들은 가나안 땅의 문명을 사랑하게 된다.
안목의 정욕이 생겨났고 이생의 자랑에 취하여 살아가게 된다. 처음에는 에덴동산이었으나 세상의 문화에 동화되어 거룩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그 단초가 된 것이 철 병거였다. 홍해를 가르신 하나님이셨다. 요단강을 멈추게 하셨다. 엄청난 이적을 통해 오늘의 이스라엘이 되게 하셨다. 그 하나님께서 함께 한 전쟁에서 그들은 철 병거 때문에 발걸음을 돌렸다고 했다. 말도 안되는 이유로 그들은 전쟁의 일부분을 포기하고 만다.
그들은 철 병거를 물리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았다. 이 작은 실수 하나로 가나안 정복의 역사가 왜곡되고 만다.
가나안 족속을 진멸하라는 명령을 어기고 그들을 남겨두었다. 고대 근동지방에서 노동력은 곧 재산을 의미하였다. 하나님의 명령을 애써 외면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그들을 종들로 삼아버리고 만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그들을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 넣으셨다.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파셨고, 팔년 동안 종이 되어 그를 섬기게 되었다고 했다. 말이 섬기는 것이지 노예보다 더 못한 악순환에 빠진 것이다.
“한 구원자를 세워”
그는 갈렙의 사위였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그들을 구원하게 하시니 그는 곧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라” 사사기 3:9
그제야 그들은 부르짖기 시작했다. 잃어버린 기도를 회복하였다. 그때 피할 길을 내셨다.
한 구원자를 세우셨다.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을 이스라엘의 젓 번째 사사로 세우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