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7일 목요일
사사기 2:11-23
“그들이 어디로 가든지”
사사기를 제삼자의 눈으로 바라보고, 그리고 객관적인 시각에서 읽는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만왕의 왕이시다. 성경은 지존무상하신 분이라고 소개한다.
어떤 시인은 이 분의 사랑을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다 기록할 수 없겠네”라고 노래했다.
하나님께서 인생들의 뒤치다꺼리하시는 모습을 보면 측은하기까지 하다.
변함없으신 분이 조석 간에 변하는 인생들을 바라보시며 속이 터지시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을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으신다. 그동안 ‘그들이 어디로 가든지’ 손수 따라다니셨다. 넘어 질 때마다 일으켜 주셨다. 그들과 함께 아파하셨다.
“그들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의 손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니 곧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것과 같아서 그들의 괴로움이 심하였더라.” 사사기 2:15
그러나 오늘 이스라엘을 향하여 매를 드시기로 작정하셨다. ‘그들이 어디로 가든지’ 함께 하셨던 그들에게 똑같은 관심으로 재앙을 내리셨다. 누구하나 예외 없음을 선언하셨다.
자녀들이 장성하고 출가를 해서 가정을 이루었다. 그 아이들이 아이를 낳았다. 손자의 등장은 새로운 세계로 초대이다. 아이가 자라면서 부리는 온갖 재롱에 웃음이 그칠 날이 없다. 기쁨 속에서 내 자녀들의 성장기를 돌아본다. 허겁지겁 살다보니 아이를 키운 것이 아니라 저들이 자라났다는 표현이 맞을 듯싶다. 아니 하나님께서 키우셨다.
바쁘다는 핑계로 못 본체 잊고 살았던 시간들이 많이 아쉽다. 늦게나마 아이를 통해서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마음에 젖는다.
만 두 살짜리 병희가 벌써 자아가 생겼다. 길을 걷다보면 넘어질까 붙잡으면 서둘러 손을 뿌리친다. ‘자기가 혼자 걸을 수 있다’는 자각이 생긴 것이다. 때로는 자신의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떼를 쓰기도 한다. 아이에게 벌써 ‘자행자지’의 마음이 생긴 것이다. 달래다가 지나치다 싶으면 엄하게 꾸짖기도 하는데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시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패는 이미 예견된 것이다. 그럼에도 부르셨다는 것이 바로 은혜이다. 목이 곧은 백성이라고 하셨다. 후회하고 돌이키고 잠잠해질만하면 또다시 옛날로 돌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내 삶이 닮았다. 아니 너무도 똑같다.
이리도 무정한 인생이었단 말인가?
어쩌면 이다지도 무심한 인생이란 말인가?
저들의 삶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성도들에게 말씀하신다. 타산지석을 삼으라고 하신다. 계속해서 했던 이야기 또 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사랑이다.
장맛비에 젖어, 하나님의 마음에 젖어 자신을 돌아보며 하룻길을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