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6일 수요일
사사기 2:6-10
“망각의 덫”
세대 간의 단절 문제는 어제나 오늘이나 여전하다.
이념으로 나누어져 동족 간에 총부리를 겨눈 채 분단의 70년의 시간이 흘렀다. 6.25라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소용돌이를 거치면서 그 상처는 더욱더 커졌다. 하지만 휴전 후 65년이란 시간이 흐른 지금은 전쟁의 아픔을 기억하는 세대들은 거의 없다시피 한 것이 현실이다.
평화라는 덫에 걸려 전쟁의 아픔을 잊은 것도 문제이지만 또 다른 전쟁이 상존하고 있다는 것조차 잃어버린다면 그것은 더 큰일이라 하겠다. 전쟁 후, 배고픈 시절을 이야기 하면 “왜 밥을 굶어요? 라면 끓여 먹으면 되지!”라는 웃지 못 할 이야기가 회자되기도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다.
민족의 지도자 여호수아 생전에는 하나님을 그들이 알고 있었다. 하나님의 친히 일하심을 목격한 장로들이 살아있을 때에는 그나마 믿음의 명맥을 잇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죽고 시야에서 사라지자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만다. 악순환의 시작이었다.
저들의 실패는 보고 믿는 신앙 때문이었다. 체험신앙의 함정이다.
주님께서도 이적을 요구하는 무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마태복음 12:38-39
부활을 의심하는 도마를 향하여 자신의 손을 내미셨고 옆구리를 만지도록 허락하셨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요한복음 20:27-29
우리가 주님을 처음 만난 날이 바로 홍해였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광야학교를 졸업한 날이 요단강이었다. 그것은 나의 일생에 한 번 일어난 사건이다. 가나안이란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이제 성도의 길을 걸어가게 된 것이다.
이 일은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나의 신앙생활이 예전에 나를 만나주셨던 추억의 하나님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흔히들 왕년이란 말을 쓰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연민을 느끼는 것은 그들의 메마른 현재의 삶이 보이기 때문이다.
매일의 삶 속에서 처음 사랑의 감격이 되살아나야만 한다. 멈출 줄 몰랐던 기쁨이 오늘 나의 삶 속에 솟아나야한다. 예전의 신앙생활을 방패삼아 오늘을 살아가는 누를 범 하지 않아야 한다. 과거에 기대어 살아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무기력한 신앙은 대를 잇지 못하고 무지한 자들로 전락하고 만다.
보지 않고 믿는 자들의 복을 전하셨다. 주님의 말씀에 기대어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