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4일 월요일
사사기 1:22-36
“내 마음의 사사기 좁은 길”
오늘 읽은 본문은 나의 인생길과 너무도 흡사하다.
이스라엘의 정복전쟁은 용두사미였다. 그들은 승승장구하였으나 철 병거 앞에는 무기력했고 오랫동안 정착민으로서 가지고 있던 가나안 문화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그들은 단호함을 버리고 타협의 길을 걸어갔다. 그들이 선호했던 단어가 있다면 ‘적당히’였을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면서 가나안 문화를 하나 둘씩 섭렵하기 시작했다.
하나님께서는 ‘진멸’을 명령하셨지만 그들은 ‘함께’를 선택했다. 하나님께서 염려하셨던 불안한 동거가 시작된 것이다. 바울 사도께서 일찍이 말씀하셨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고린도후서 6:14-15
루스는 벧엘의 옛 이름이었다. 야곱이 걸었던 길이었다. 형 에서의 칼날을 피해서 도망칠 때, 노숙을 청했던 그 자리였다. 돌베개로 잠을 청하다가 하늘 문이 열린 곳이었다. 그는 꿈에서 깨어 그곳에서 자신의 가진 모든 것으로 맹세하며 예배를 드린 곳이었다. 요셉지파는 벧엘을 향하여 진군했고 야곱의 땅을 회복했다.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창세기 49:22
야곱의 축복대로였다. 그 역사적인 현장을 요셉지파에 맡기셨다. 그들은 그곳에서 야곱의 꿈을 기억했다.
계속해서 다른 지파들의 정복전쟁의 실패와 포기를 지나가는 말처럼 반복해서 기록했다. 심지어 단 지파는 아모리 족속에게 밀려나 산지에 기거하게 되었다고 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러한 우유부단한 정책은 처음에는 가나안 족속들을 정복하는 듯 했으나 나중에는 그들의 문화에 점령당하게 된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들의 이성을 더 신뢰하였고 결국 저들의 문화에 종속당하는 ‘동화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이것이 다원주의요, 혼합주의이다.
우리들의 신앙생활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세상과 타협하며 한발 물러서게 되면 그 다음에는 두 걸음 세 걸음 물러설 수밖에 없을 것이고 결국 배교의 길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오늘도 우리는 세상이라는 땅 위에 두발을 딛고 살아가야만 한다. 그러나 ‘공존’을 할지언정 ‘공생’은 거부하는 단호함이 있어야한다. 땅 위에서 하늘 길을 걸어가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소해 보이는 일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고, 물러서지 않는 것만이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마음에 새기며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