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부족함을 만족함으로 (마지막입니다.)
“목사님, 다음 주 집회 때 전해 주실 말씀 본문과 제목을 알려주세요.”
“본문은 시편 23편 전체, 제목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문장이 끝나지 않은 제목은 어색하던 시절이라 학생은 다시 질문했습니다.
“제목이 이게 다예요?”
“뭐가 더 필요해?”
“알겠습니다. 다음주에 뵐게요.”
그렇게 전화를 끊고 다음 주에 집회장에 도착해서 순서지를 받아 든 목사님은 박장대소를 했습니다. 그 순서지에 설교 제목이 이렇게 적혀 있었던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뭐가 더 필요해?”
그 제목을 본 목사님이 오히려 더 큰 은혜를 받았다고 합니다.
지금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고 있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이리와 승냥이의 숫자를 파악하고 계곡의 깊이와 길이를 탐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나를 지키시는 목자라는, 누구도 끊어 놓을 수 없는 관계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야 계곡에서도 노래를 부르는 근사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라는 구절이 6절에 있지 않고 1절에 있는 것이 너무나 감사합니다. 모든 것이 이뤄진 후에는 누군들 감사와 만족을 못하겠습ㄴ니까? 하지만 일의 시작에서 만족을 선포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뭐가 더 필요합니까?
마태복음 25장에는 유명한 달란트 비유가 나옵니다.
첫째, 자신의 눈으로 다섯 달란트를 본 것이 문제였습니다. 한 달란트는 결코 적은 돈이 아닙니다. 하지만 다셧 달란트, 즉 30억의 돈을 이미 본 것이 그를 불만족의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둘째, 부족함을 없는 것으로 착각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주인이 돌아왔을 때 한 달란트 받은 종이 그것을 내놓으면서 한 말이 충격적입니다.
“당신은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사람입니다.”
이사람이 지금 주인을 향해 당신은 심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으로 봐서, 그는 한 달란트를 적은 것으로 보지 않고 없는 것으로 봤음을 알 수 있습니다.
셋째, 가장 중요한 불만족의 이유는 주인과의 관계입니다. 주인이 돌아왔을 때 종은 주인을향해 당돌하게 이야기 합니다. “당신은 굳은 사람입니다.” 이 종은 주인을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주인이 30억, 12억, 6억이라는 엄청난 돈을 나눠 줬음에도 불구하고 주인을 인색한 사람으로 오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종이 주인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그는 자신이 한 달란트를 땅에 묻은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마 25:25)
종은 주인을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관계에 빨간불이 들어온 것입니다. 불만족은 비뚤어진 관계에서 생겨납니다.
“하나님이 성도를 어느 교회에 보내실 때는 그냥 보내시는 법이 없어요. 상처 받은 한 성도를 교회에 보내실 때 하나님은 댈러스의 어느 교회에 보내면 이 상처 입은 영혼을 잘 보살펴 줄까를 생각하시다가, 최 목사와 세미한교회를 생각하시고 믿고 보내 주신 거에요.” 그순간 눈이 열렸습니다. 그때까지 하나님을 향해 품고 있던 서운한 마음이 감사한 마음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전까지는 하나님이 나를 골탕 먹이시려고 어려운 성도를 보내시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내가 그런 성도를 잘 목양할 수 있다고 인정해 주셨기 때문에 내게 맡기신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감사가 넘쳤습니다. 상황은 바뀐 것이 하나도 없는데, 내 마음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관계가 바로 세워지니 불평이 감사로 바뀌었습니다.
‘나는 한 달란트만 있어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주인이 믿어 주는데, 저 사람은 얼마나 능력이 없었으면 주인이 다섯 달란트나 줬을까?’ 관계가 상황을 재해석해 낸 것입니다.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지만, 주인과의 관계가 바로 서 있으면 어#4356;#4448;#4523; 상황도 불평과 불만이 아닌, 만족과 감사로 바뀌는 것입니다. 시편 23편에서 시인이 모든 일 앞에서 미리 감사와 만족을 노래할 수 있었던 것은 여호와가 나의 목자시라는 변치 않는 관계 때문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부족해도 괜찮습니다. 정말 괜찮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만 이상이 없다면,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만족을 노래할 수 있습니다.
다른 병은 생기면 온 가족이 살려 내겠다고 식음을 전폐하고 도와주는데, 문둥병에 걸리면 부모도 버립니다. 그러니 이곳에 온 사람들은 모두가 몸에 생긴 병보다 마음에 생긴 병이 더 큰 사람들입니다. 세상에서는 아무도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데, 이곳에 와서 자신들을 아무 조건 없이 받아 주는 예수님을 만나고 인생을 새로 시작한 사람들이 소록도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소록도에 와서 변한 게 아닙니다. 소록도에서 조금 더 가면 섬이 하나 더 있는데, 그 섬을 다녀오고서 인생이 다 변해 버렸습니다. 그 섬 이름이 조금 특이한데 ‘지라도’라는 섬입니다. 우리 소록도중앙교회 사람들은 한 사람도 안 빼고 다 이 지라도에 갔다 왔습니다. 목사님들도 이왕 바쁜 시간을 내셔서 이곳까지 오셨으니까, 제가 주소를 알려 드릴 테니 이 지라도에 갔다가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우리 일행은 여기까지 왔으니 이왕이면 그 섬에 들렀다 가자고 마음을 모으고, 주소를 알려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주소는 아주 쉬운데, 바로 하박국 3장 17-18절입니다. 거기에 보면 지라도라는 섬이 나오는데, 이 지라도에 다녀오면 겁날 게 없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여기 지라도라는 섬이 나오지요. 이 섬에만 갔다 오면 병이 있고, 없고가 문제가 안 됩니다.
먹을 것이 있고 없고, 입을 것이 많고 적고도 문제가 안 됩니다. 이섬에 다녀온 사람은 다 이렇게 바뀝니다.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오늘 이 섬에 다 갔다가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부족함은, 만족으로 초대하시는 하나님의 초대장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모든 것에서 만족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
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 15:5)
우리의 만족은 소유에서 오지 않습니다. 우리의 존재를 예수님께 온전히 내어 맡길 때 만족이 생깁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으로 들어가면 그분 안에 완전히 잠기게 됩니다. 그 순간 아무리 깨진 독이라도 그분이 주시는 만족으로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대학원 시절에 감께 공부하던 전도사님이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어느날 필립 얀시의 책을 읽다가 탁자 위에 놓아뒀는데, 아내가 지나가다가 그 책을 보고는 왜 이런 책을 읽느냐면서 불쾌한 얼굴을 하고, 책을 툭 치면서 지나가더랍니다. 이유를 물으니, 책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책 제목은 <<아내 안에 하나님이 없다>>였습니다. 사모님이 왜 내 안에 하나님이 없느냐고 따지면서 “당신은 나를 어#4356;#4448;#4546;게 봤기에 이런 책을 읽느냐”고 타박하는데,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사실 그 책 제목은 <<아, 내 안에 하나님이 없다>> 였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속에는 항상 우리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는 하나님이 없을 때가 너무 많습니다. 이 마음은 한쪽의 마음에만 있어야 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내 안에 거하고, 내가 네 안에 거할 때 과실을 많이 맺는 삶을 살 수 있다.” 예수님이 우리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속삭이십니다. “이제 네가 내 안으로 들어오렴.”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가 그분 안으로 들어가야 할 시간입니다. 그분 안으로 들어가서 그분 안에 잠겨야 합니다. 완전히 잠수해야만 합니다.
하나님 안에 잠길 때 찾아오는 안전은 생각보다 큽니다. 세상이 흔들리고 나라는 변하고 군왕은 춤추며 인생이 바다 가운데 빠진다고 해도, 하나님의 깊은 임재 속에 들어간 사람은 늘 안전합니다. 큰 파도가 뛰놀고 사나운 물이 인생의 거룻배 안으로 들어와 삶을 통째로 흔들어 놓을 때, 산소마스크를 하고 바닷속 깊은 곳으로 내려가면 그곳에서 가장 고요하고 안전한 피난처를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힘들어질수록, 파도가 거세질수록 하나님의 더 깊은 임재 안에 잠겨야 합니다. 임재 속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그곳이 가장 안전한 곳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시 139: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