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부족함은 행복을 깨우쳐 준다.
철학자 플라톤이 말한 행복의 조건은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첫째, 먹고, 입고, 살고 싶은 수준에서 조금 부족한 듯한 재산, 둘째, 모든 사람이 칭찬하기에 약간 부족한 용모. 셋째, 절반 정도밖에 알아주지 않는 명예. 넷째, 겨뤄서 한 사람에게 이기고 두 사람에게 질 정도의 체력. 다섯째, 연설을 듣고서 청중의 절반은 손뼉을 치지 않는 말솜씨. 플라톤은 이렇게 적당히 부족한 상태에서 인간은 비로소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말합니다.
싸움을 잘했던 초등학교 시절보다 싸움을 하지 않았던 중학교 시절이 훨씬 행복했습니다. 적당한 체력은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6개의 잼이 진열된 시식 코너를 거친 사람들은 30%가 잼을 구입한 반면, 24개의 잼이 있는 시식코너를 거친 사람들은 겨우 3%만 구입 했습니다. 그 차이는 자그마치 10대 1이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삶에서 잼의 종류가 너무 적다고 불평합니다. 그리고 잼이 넘쳐 나는 화려한 삶을 기웃거리며 부러워하죠. 많은 선택의 조건은 그 숫자만큼 많은 고민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히 12:2)
예수님만 바라보면 감사가 생깁니다. 너무 많은 것을 바라보면 불만이 차오릅니다. 다리 4개를 다 봐야 한다는 사자의 욕심이 그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듯이, 우리 안에 들어와 있는 보고싶고 하고싶은 수많은 욕심이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듭니다. 우리의 눈이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님만 바라본다면 예수님이 주시는 만족이 우리 안에 충만할 것입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빌 4:11)
그는 가난을 부유함으로 바꾸지 않았습니다. 배고플 때 요술을 부려서 빵을 만들어 내는 능력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런 모든 상황 가운데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일관했습니다. 이런 사람을 누가 당하겠습니까?
바울이 말하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고백입니다. 가난이 와도, 고통이 와도, 배가 고파도, 몸이 아파도, 어떤 상황에 놓인다고 해도 그 상황이 나를 넘어떠리지 못합니다. 모든 일 속에서 자족하고 감사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가난과 배고픔을 피해 간다고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넘어지지 않고 감사하는, 자족하는 마음이 가장 큰 능력입니다. 행복은 배고픈 배가 불렀을 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순간에 감사를 잃어버리지 않을 때 찾아오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기로 작정한 바울을 사탄이 무슨 수로 이길 수 있겠습니까?
한 명도 모자라서 어떻게 부부가 다 암에 걸릴 수 있을까요. 그런데 심방을 가 보면, 부부가 입을 모아 그래도 감사를 외쳤습니다. 이제 60세를 살아 놓고도, 이만큼 살아온 것도 감사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암이 그분들의 입에서 감사를 빼앗아 갈 수 없었습니다. 놀랍게도 하나님이 그 말기 전립선암을 고쳐 주셨습니다. 감사가 암을 이긴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안수집사님의 전립선 암이 완치 판정을 받고서 얼마 지나지 않아, 서른 두 살의 장남이 임파선암에 걸립니다. 회계사 시험에 합격하여 전도유망했던 청년에게 말기 입파선암이라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온 것입니다. 의사가 항암 치료를 환자 본인의 의사에 맡긴다고 할 정도로 가망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을 심방할 때마다 이제는 3명이 감사하다고 고백햇습니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있어서 하나님이 이런 훈련을 시키시니 얼마나 감사하냐고 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 청년의 말기 암역시 완치 판정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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