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부족함은 소통을 열어 준다.
목회자가 설교를 준비할 목양실이 없다는 것은 참 슬픈 일입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제게 목양실이 없었던 것은 불행한 일이 아니라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목양실의 부재가 제게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줬으니까요. 푹신한 소파가 기다리는 목양실 대신 딱딱한 의자가 있는 커피숍에서 보낸 지난 10년이 넘는 시간은,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소중한 배움의 시간이었습니다.
매일 새벽 예배 후 스타벅스로 향할 때마다 마음속에 기대감을 안고 잡니다. ‘오늘은 어떤 말씀을 주실까? 오늘은 어떤 사람을 만나게 하실까? 오늘은 어떤 소통이 이뤄질까?’ 하루하루가 기대됩니다.
김은성 KBS 아나운서가 그 어렵다는 TV 방송국 아나운서 시험에 합격하게 된 이야기가 너무 놀라웠습니다. “자네는 그 얼굴을 하고 어떻게 아나운서가 되려고 생각했나?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해도 아나운서의 생명은 자기관리인데, 자기 관리가 그렇게 소홀해서 얼굴이 돌아가게 했다면, 뉴스를 진행하다가 얼굴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보장을 어떻게 하겠나?” 이렇게 말하면서 불합격 판정을 내리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물러서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지금 일시적으로 얼굴이 돌아갔지만, 이 얼굴은 조금만 지나면 정상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면접관님들도 인생에서 어려운 순간들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때 포기하셨더라면 오늘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것입니다. 제가 얼굴이 돌아갔음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까지 포기하지 않고 나아왔다면, 얼마나 사명감이 투철했으면 그랬겠습니까? 뽑아주신다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참자녀가 되었다면, 나의 부끄러움을 솔직하게 드러내서 사람들과 나눌 필요가 있습니다. 그때 놀라운 소통이 일어나서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나를 돕고자 나서게 될지도 모릅니다. 나의 부족함을 포장하여 그럴듯하게 보일 필요가 없습니다. 나의 모습 그대로가 가장 강한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골리앗 앞에 서려고 할 때, 사울 왕이 자신의 갑옷을 다윗에게 입혀 주려고 합니다. 몇 번 입어보기를 시도하던 다윗은 그 옷을 집지 않고, 그냥 자신이 입던 목동의 옷을 입고 나갑니다.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옷은 제 아무리 잘 만든 최상품 이라고 해도 싸우는데 방해가 되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자기다움이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하는 것을 어린 소년은 알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모습 그대로 골리앗 앞에 서야 물맷돌을 자연스럽게 돌릴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사울 왕의 갑옷을 찾지 말고, 있는 모습 그대로 세상을 향해 나아갑시다. 우리의 부족한 모습 그대로가 세상을 바꾸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것입니다.
베드로를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납니다. 베드로를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납니다. 베드로를 생각하면 왠지 자신감이 생깁니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계속 붙잡아 주셨다는 그 사실 한가지만으로 제 마음은 언제나 다행스럽습니다. 지금도 설교하면서 “성경에서 실수를 제일 많이 한 사람이 누구인가요?” 하고 물으면, 성도들은 일제히 약속이라도 한 듯 “베드로요!”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리고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가득하죠.
베드로는 자신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소통의 대가였습니다. 그의 부족함으로, 세상에서 부족함을 느끼고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과 소통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베드로를 쓰셨다면 여러분도 쓰실 것입니다”라고 설교할 때 들려오는 성도들의 “아멘” 소리가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베드로는 우리의 희망입니다. 예수님이 만일 베드로를 포기하셨다면, 우리는 불안 가운데서 예수님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부족함과 모자람으로 점철된 베드로의 인생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를 추적하신 하나님의 열심 때문에 우리는 오늘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부족함을 알고 계신 우리 주님은 우리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아니, 우리를 향해 말씀하시죠. 우리의 부족함의 코드를 갖고 세상의 또 다른 베드로들과 소통하라고요. 그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그들의 부족함을 받아주고, 그들과 소통하면서 주님 앞으로 인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부족함을 방치해 두지 말아야 합니다. 소통의 도구로 사용해야 합니다. 베드로를 보면 아픔이 편안해지듯, 우리는 누군가 우리를 볼 때 마음이 편안해지는 그런 베드로가 되어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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