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16일 목요일
시편 34:15-22
“여호와의 눈은”
시편은 승리의 노래이다. 좌절했던 인간의 회복과 분투의 기록이다. 그러나 승리라는 열매에 취하다보면 정작 환난이라는 도가니는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승리에 앞서 전쟁이라는 치열한 싸움이 먼저임을 기억해야만 한다. 성경에 어느 한곳도 거저 얻어진 승리는 없다. 만사형통이란 말은 치열한 싸움을 전제로 한 것임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된다.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라는 제목이 없다면 오늘의 신앙고백은 평탄한 길을 걸어가는 만사형통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다윗에게는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는 막다른 골목이었다.
다윗은 두 갈래 길에 서있었다. 그는 이정표에서 좁은 길을 선택했다. 그 길은 여호수아와 갈렙이 걸어갔던 길이었다.
가데스 광야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대표를 뽑아 가나안 땅 정탐을 명령했다. 돌아온 그들은 똑같은 환경을 보았음에도 의견은 두 가지로 갈렸다. 그들은 이미 애굽의 막강한 군사들이 수장 당하는 홍해대첩의 영광을 보았고 반석에서 물이 쏟아지는 기적을 먹고 마셨다. 이처럼 하나님의 능력을 이미 체험하였음에도 다수인 10명의 사람들은 절망을 이야기하였다.
오늘 다윗의 고백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나를 보라’는 사인을 보내신다. 끝 모르는 추락의 위기에 처해 있느냐? 그렇다면 지금이야말로 나를 만날 기회라는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시험을 주시되 감당치 못할 시험은 주지 않으신다고 하셨다.
인간의 속성상 어려움이 없으면 절대로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가 없음을 누구보다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시고자 오늘도 일하신다.
“의인이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들의 모든 환난에서 건지셨도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시편 34:17-18
오늘도 묵상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얼굴의 뵙는다. 다윗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다. 모든 환난에서 건지셨다. 그들은 마음이 상한 자들이었다. 어려움 속에서 자신의 부족을 아뢰었다. 애통하며 자신의 잘못을 돌이켰다.
그들은 막막함 속에서 그저 살려달라고 외쳤다. 그때 하나님의 손이 그들을 붙드셨다. 이미 붙들고 계셨다. 눈물 속에서 비로소 주님의 손길이 보였다.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그들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 시편 34:15
하나님의 눈은 나를 바라보고 계신다. 하나님의 귀는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신다. 나를 건지시기 위해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온통 나를 위해서 일하고 계신다.
국어사전에서 ‘속량’이란 단어는 “몸값을 받고 종을 놓아주어 양민이 되게 함.”이라고 했다.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값을 치르신 분이 계시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다 벌을 받지 않는다고 하셨다. 120년 동안 방주를 만든 노아의 가정을 구원하셨다. 오늘도 방주의 문은 열려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부르고 계신다. 이 망극하신 사랑이 ‘십자가’이다.
“여호와께서 그의 종들의 영혼을 속량하시나니 그에게 피하는 자는 다 벌을 받지 아니하리로다.” 시편 3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