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15일 수요일
시편 34:1-14
“항상 찬양하는 자”
원망을 해야 인간적이지 않을까? 시기심에 눈먼 한 인간 때문에 졸지에 도망자가 된 것만 해도 억울했을 다윗이었다. 유다땅 어느 곳에서도 몸을 의탁할 만한 곳이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택한 곳이 블레셋 땅이었다. 그곳은 일전에 죽인 골리앗의 고향이었다. 그곳에서 더부살이를 시작했으나 의심에 눈초리를 거두지 않은 신하들의 말을 들은 아기스 왕이 그를 시험하려고 부르자 침을 흘리며 미친 척 해야만 했던 처절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다윗은 원망은커녕 너무도 아름다운 시로 승화시켰다. 사울에게 쫓기고 아비멜렉에게 쫓겨나 그가 향한 것은 하나님의 품안이었다.
그는 환경을 원망하기에 앞서 노래했다. 하나님을 자랑했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 단서가 1절에 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내 입술로 항상 주를 찬양하리이다” 단 한절에 ‘항상’이라는 단어가 두 번이나 등장한다.
그는 항상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그는 평소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생활이었다. 지금으로 말하면 새벽기도를 빠지지 않았고 말씀 묵상을 거르지 않았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랬다. 그의 찬송은 그의 삶을 지탱케 하는 훈련이었다. 처절한 위기의 순간에도 그는 자동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았고 하늘을 향하여 목소리 높이 찬송할 수 있었다.
시편 33편에서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온 누리에 충만하다고 했다. 오늘 내가 숨을 쉬고 있는 공기처럼 바로 내 곁에 계신다는 말씀이다. 충만의 또 다른 말은 내게 시선을 떼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관심’이다. 졸며 주무시지도 않으시는 단 한 가지 이유는 오직 나만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눈길이시다. 이것이 내가 오늘 찬송해야할 이유이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이처럼 곤고한 처지로 내몬 것은 세상에 머문 시선을 자신에게로 향하라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다. 세상에 의지할 모든 것을 끊어버리자 비로소 하나님만을 바라보게 되었다. 이것도 버리고 저것도 믿지 못하는 세상에서 그가 바라본 최종 목적지는 결국 이 땅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였다.
악한 세상에서 의인의 삶은 고단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기도해야한다. 나의 영원한 우군이신 하나님께 나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의인의 간절한 기도에 언제나 응답하신다. 여기에 승리의 비결이 있다. 그는 자신의 처지를 바라보지 않았다. 광대하신 하나님을 노래했다. 곤고한 자였지만 기도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는 배부른 자였다.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시편 34:9
시인은 두려웠다. 늘 부족했다. 그러나 때를 따라 돕는 은혜로 다 채우시는 참 좋으신 하나님을 경험하게 된다. 그가 한일이라고는 부르짖음밖에 없었다. 그리고 평소대로 찬양하였다. 바로 그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넘쳤다. 부족함이 없는 인생이 되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주시는 복이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편 23편 말씀을 노래하며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