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1일 수요일
시편 23:1-6
“여호와는 나의 목자”
시편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23편은 읽는 것만으로도 평안해진다. 성도의 아름다운 고백이 서정시로 그려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22편의 고난의 과정이 없었다면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는 시인의 고백은 반쪽자리일 것이다.
푸른 초장을 지나면 보이는 또 다른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
영혼을 소생시키신다는 말을 뒤집어보면 생명이 경각에 달린 시인을 심폐소생술을 통해 구원하신다는 것이다.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신다는 말 또한, 원수의 무리들이 호심탐탐 우리들을 해치려 기회를 엿보고 있다는 말이다.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 가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 죽였나이다.” 사무엘상 17:34-35
목동시절을 회상했다. 그는 열심을 다해서 아버지의 양떼를 돌보았다.
그가 골리앗을 상대하기 위해서 사울 앞에서 섰을 때, 이 아름다운 고백 속에 목자의 심정이 무엇인지를 잘 알려준다. 들은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이 실제로 체험한 간증이었다.
성도의 삶에 고난이 없다면 얼마나 좋으랴마는, 그런 일은 성경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 때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했다. 시인의 이러한 견고한 믿음은 여전히 자신의 손을 놓지 않고 계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환경을 넘어서야 보이는 하나님 나라이다.
그 하나님께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손상된 우리의 자존감을 세워주시기 위해 원수 앞에서 파티를 여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형편을 도우시고 개선할 뿐만 아니라, 나의 영적인 밑바탕에 깔린 상처받은 내면까지 치료하신다. 목자의 손에 든 막대기와 지팡이는 외부 적들을 방어하는데 사용하시기도 하지만, 엉뚱한 길로 들어서는 나를 인도하시기 위해 회초리로 사용하시기도 하신다.
양은 지독한 근시라서 대부분의 양의 눈은 땅을 향해있다. 집을 찾아갈 능력도 없고 목자를 떠나서는 생존할 수 없는 무리들이다. 세상 것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인생과 똑 닮았다. 결국 우리의 생존을 책임지실 선한목자 되신 주님을 따르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음을 깨닫는 것이 바로 신앙생활이다.
그 주님께서 나의 목자가 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 사진에 등장하는 멋진 목자이신 주님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시다. 밤낮 들에서 지내며 새벽이슬을 맞으며 한데서 지내야하는 고된 목자의 길을 걸어 가셨다.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뒤 따르는 반석이 있었다.
광야에서 물을 내시고 먹을 것을 주시며 추위와 더위로부터 보호하는 하나님이셨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시편 23:6
오늘 시인도 동일한 고백을 드리고 있다. 자신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따라온다고 했다. 그리고 그의 시간은 영원을 향하여 나아간다.
오늘 하루도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목도하기를 기대한다. 승리의 노래를 부르며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