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31일 화요일
시편 22:22-31
“땅 끝에서 부르는 노래”
고생 끝에 낙이라고 했던가요? 오늘 시인이 꼭 그렇습니다. 모진 시련 속에서도 그가 놓칠 수 없었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오늘에서야 그 열매를 맺습니다. 그리고 시인은 절망의 순간을 넘어 소망을 담았던 그 시간을 잊지 않기 위해 노래를 부릅니다.
그것을 찬양이라고 하지요. 그래요 시인은 자신뿐만 아니라 오고 오는 세대를 향하여 자신의 경험을 나누어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붓을 들었고 시편을 기록했습니다. 그뿐 만아 아니었습니다. 곡을 붙이고 지휘자를 세워서 일사분란하게 함께 노래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전 국민 합창단을 조직한 것입니다.
그의 노래에서 등장하는 단어들이 참 놀랄 만합니다. 그의 고백 속에 1,000년 후에 일어날 주님의 십자가가 담겨있었습니다. 어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한 인생의 삶 속에 복선을 깔아놓으신 하나님의 일하심이었습니다.
누가 반석에서 물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을까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위에서 콸콸 샘솟는 물을 주셨습니다. 200만 명이 먹고 마실 수 있는 강같이 흐르는 샘물이었습니다. 주님이셨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웃음이 있습니다.
오늘은 이방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강물처럼 흐릅니다. 땅 끝에서 부르는 노래입니다. 곤고한 땅 끝이었습니다. 여기에 나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을 만납니다. 다윗을 통해 한국 땅을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아담 한 가정으로 시작된 구원이 땅 끝에서 마무리 될 것입니다. 그에 앞서 많은 사람들이 시편 23편을 암송합니다. 그러나 고난이라는 도가니를 통과하지 않고서는 목자 되신 주님을 잘 알수 없습니다. 고난의 때가 있기에 결국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실 주님을 노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시편 22편의 고난의 계단을 통해서만이 시편 23편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시인은 찬양하라고 명령합니다. 울부짖음을 들으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보고 계셨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곤고한 자의 곤고를 멸시하거나 싫어하지 아니하시며 그의 얼굴을 그에게서 숨기지 아니하시고 그가 울부짖을 때에 들으셨도다” 시편 22:24
그렇습니다. 곤고한 자를 이미 보고 계셨습니다. 도우시려고 이미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영원을 바라봅니다.
“겸손한 자는 먹고 배부를 것이며 여호와를 찾는 자는 그를 찬송할 것이라 너희 마음은 영원히 살지어다” 시편 22:26
아마도 내가 예수를 믿지 않았다면 ‘영원’이란 단어는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시인은 고난 중에 바라본 마지막 보루는 바로 영원이었습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을 바라보면서 하나님 나라를 기억했습니다.
다윗은 우리나라 강원도 땅만 한 유다의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영원의 나라를 꿈꾼 다윗은 국경을 초월합니다. 그의 안목은 전세계를 바라보았습니다.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였습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