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30일 월요일
시편 22:12-21
“절망 중에 부르는 노래(2)
엄습해오는 공포에 시인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주위에서 밀려오는 따가운 시선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 어느 고통보다 모두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사실이 더 견디기 어려웠다. 시시각각으로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위협에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신의 처지를 하나님께 아뢴다.
시인처럼 주님께서도 모두로부터 조롱 당하셨다. 심지어 삼년동안 동고동락했던 제자들로부터 외면 당하셨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죽는 순간까지 기도하셨다.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밀랍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시편 22:14
자신의 존재가 허물어졌다고 했다. 자존심이란 말은 꺼내기조차 어려웠다. 시인은 이러한 자신을 물처럼 밀랍처럼 녹았다고 했다. 다리조차 가눌 수 없는 극한의 자리에서 자신을 바라보았다. 말라비틀어져 모든 뼈가 드러났다고 했다.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그들이 나를 주목하여 보고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시편 22:17-18
자신들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는데 무지한 저들은 낄낄거렸다. 주님의 겉옷을 나누고 속옷을 가지고 제비를 뽑았다. 그곳은 조롱과 치욕의 현장이었다.
이것은 죽음이라는 단어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는 막다른 골목이었다. 망치소리가 들렸다. 피가 튀고 창끝이 허리를 관통했다. 외마디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그곳은 도살장이었다.
시인의 이런 고통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일까?
주님께서는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따를 것을 요청하셨다. 그렇다면 오늘 내게 아무런 시련과 환난이 없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내가 정말 십자가를 질 수 있는지, 십자가를 질 마음은 있는 것인지,
내가 지금 십자가를 지고 있는지 아니면 구경만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본다.
별로 아프지 않고 별로 하나님 부를 일 없고 마음이 녹아내릴 정도로 고통도 없다면
아직 나는 십자가를 그저 만지작거리고만 있는지 모를 일이다.
시인은 극심한 고통의 순간에 마지막으로 아니 끝까지 기댈 곳을 찾는다. 그는 엎드렸고 기도했다.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의 기도는 절절함 그 자체였다. 그의 절실한 고백 속에 주님의 십자가가 고스란히 기록되었다.
요즘 허리를 삐끗해서 며칠째 거동이 불편했다. 조그만 통증에 온몸이 소동하는데 시인은 참기 힘든 고통에 시달리다 못해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벼랑 끝에서 그는 자신을 살리실 오직 한분께 만 매달렸다. 끝 모를 나락으로 떨어진 그에게 최종적인 결과를 통보하신다. 멈추지 않는 그의 기도에 드디어 응답하셨다.
“나를 사자의 입에서 구하소서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들소의 뿔에서 구원하셨나이다.” 시편 22:11
여기서 배운다.
기도의 사람은 절망할 수 없는 사람이란 것을…
하나님께 기대는 것이 믿음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