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28일 토요일
시편 22:1-11
“절망 중에 부르는 노래”
왕의 고백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한 나라를 다스리는 왕의 모습은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자신의 계급장을 내려놓고 나약한 한 인간으로서 절대자이신 하나님 앞에 엎드렸다. 밤낮 부르짖음에도, 아무런 소식이 없음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모든 것과 단절된 절망 속에서 시인은 자신의 처지를 내려놓고 애통하며 부르짖는다. 도움의 손길이 필요했으나 거절당한 것처럼 보였다. 하나님께서는 너무 먼 곳에 계신 듯했다. 막막한 순간에 그는 찬양 속에 거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해냈다. 신음소리로 거룩하신 하나님을 읊조렸다. 그의 고백은 조상들을 건지셨던 하나님을 추억함으로 용기를 얻는다.
오늘 다윗의 울부짖음 속에서 주님의 십자가가 보인다. 온 백성과 함께 절망의 노래를 부른다. 그는 잊지 않기 위해서 노래했다. 오늘의 자신이 있기까지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가슴에 새겼다.
조롱 받던 때가 있었다. 벌레처럼 비방거리로 떨어졌던 수치스러운 기억을 그는 결코 잊을 수가 없었다. 그는 노래하면서 지난 과거를 돌아보았다.
그는 노래 속에서 주님을 만났다. 골고다가 보였고 주님의 수난을 기록한 것이다. 만왕의 왕 되신 주님께서 ‘하나님’이라는 계급장을 떼시고 인간의 모습으로 죽음의 길을 향하여 걸어가셨다.
어제까지 호산나를 외쳤던 군중들이 오늘은 십자가에 매달라며 아우성쳤다. 성전을 삼일 만에 헐고 세우는 자여 너를 구원하라며 조롱했다. 어떻게 한입 갖고 두 말 하느냐고 따지고 싶었다. 그러나 저들의 이율배반의 모습 속에서 똑같은 나를 발견한다.
나의 실패는 공의의 하나님을 자주 잃어버리는데 있다. 사랑의 하나님께만 매달리다보면 이정도 쯤은 눈감아주실 거야라며 자주 넓은 길로 나아갔다. ‘이정도 쯤은 아마도 용서하실 거야’라며 세상과 타협하기를 즐겨했고, ‘주님은 사랑이 많으시기 때문에 또 용서하실 거야’라며 다른 방식으로 여전히 주님을 못 박고 있었다. 미숙한 나의 신앙은 용서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질 못한 채, 공의의 하나님을 만홀히 여긴 것이다.
내가 벌레가 되기 전 까지는 주님을 몰랐다.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기 위해 흘리신 보혈이 무슨 뜻인지를 잘 알지 못했다. 쓰라린 죄의 대가를 치르고서야 깨닫게 되는 어리석은 자였다. 그럼에도 인생의 나락에서 내 손을 뿌리치지 않으시고 잡아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이제야 조금씩 알게 된다. 이것이 은혜이다.
그는 절망 중에 노래했다. 자신의 비참함을 고백한다. 그리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자비를 구했다. 그는 왕이었지만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자리까지 내려갔다. 그제야 구더기 같은 인생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늘도 주님은 여전히 낮은 곳에서 우리들을 부르신다. 세상은 높은 곳을 향하여 달려가지만 성도는 낮은 곳을 바라보는 자이다.
“낮은 곳에 임하소서.”
노래하며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