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5일 목요일
시편 4:1-8
“침상에서 부르는 노래”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시편 4:1
시편 3편에서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기도하였던 그의 부르짖음이 계속된다. 그는 기도하는 사람이었고, 예전에 하나님의 너그러움을 경험했던 자였다. 그는 기도의 젖줄을 하나님께 대고 있는 사람이다.
복 없는 자들의 허탄한 짓거리를 보라.
“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바꾸어 욕되게 하며 헛된 일을 좋아하고 거짓을 구하려는가?” 시편 4:2
그들은 악인의 꾀를 쫓아 분주하게 시인을 모함하고 대적하고 있다. 그에 반해 시인은 잠자리에 들기 전, 자신의 처지를 낱낱이 고백하며 하나님께 나아가고 있다. 그는 적극적으로 변명하거나 분주하게 자신을 변호하지 않았다.
오히려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소극적으로 보였을 기도의 자리로 나아갔다. 아침시편이라고 부르는 시편 3편에서 기도로 새벽을 열었던 그는 오늘은 저녁에 기도로 하루의 일상을 주님께 보고를 드린다. 잠자리에 들기 전 침상에서 하나님께 나아갔다. 그의 삶은 철저히 하나님께 기대어 사는 사람이었다.
이 세상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들로 가득 차 있다. 우리가 평안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주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게로 오라고 외치시는 주님의 음성이 들리는 자는 복된 자이다.
오늘도 주님께서는 두 팔을 벌리시고 십자가에서 우리들을 기다리신다. 십자가의 보혈은 우리들의 주홍 같은 죄를 흰 눈처럼 깨끗케 하신다. 나의 경험과 인내를 시험하지 않으신다. 있는 그대로 받아주신다.
하나님 나라의 입학원서의 조건이 학벌이 아니고, 재벌이 아니고, 인맥이 아니고, 혈통이 아니라, 오직 병든 자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은혜이다.
그는 자신에게 타이르듯이 악인들을 책망하고 있다.
“너희는 떨며 범죄하지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 시편 4:4
그의 삶의 기초는 율법을 즐거워하는 것으로 출발해서 기도하는 것으로 마친다. 그는 불평의 조건에서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하늘을 향하여 입을 열었다.
“여러 사람의 말이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뇨 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추소서” 시편 4:6
“여러 사람의 말이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뇨 하오니”라는 말은, 선거의 계절에 “어떤 정치가가 우리를 잘 먹고 잘 살게 해 줄 것인가?”라고 찾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과연 어떤 신이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해 줄 수 있을까?”라며 우상을 찾고 있는 것이다.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재편되고 어떤 이슈가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을까 혈안이 되고 있다. 그러나 열광하며 뽑은 대통령들이 임기 말에는 빨리 바뀌었으면 하는 레임덕 현상을 바라보면서, 여전히 허상을 쫓는 인생들의 모습을 본다. 아마도 이것이 현대를 대표하는 인본주의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여기 신실한 한 사람, 다윗은 콘테스트를 하듯이 신을 찾는 교만한 사람들 앞에서,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취소서”라고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
그는 한 나라의 왕이었으나 하나님 앞에서는 어린아이였다. 젖을 찾는 어린이처럼 말씀에 목말라했다. 그리고 그의 평안의 기초는 여호와를 의지하는 것에 있었다. 그의 기쁨은 곡식과 새포도주의 풍성함보다도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 있었다.
그래서 그의 고백이 더 아름답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 시편 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