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2일 월요일
시편 1:1-6
“복 있는 그 사람”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시편 1:2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오늘 나는 두 갈래 길을 만났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신뢰한다면 의인과 악인의 길 앞에서 머뭇거릴 일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격적인 분이시기에 나를 로봇으로 만드시지 않으셨다. 그러므로 이것은 강요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이다.
‘오직’이란 단어가 주는 중압감은 피할 수 없는 유일한 길임을 설명하는 마침표이다. 선택의 기로에서 삶의 이정표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이다.
며칠 째 말씀이 없으셨다. 너무나 익히 알고 있는 말씀임에도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었다. 눈물이 고이고 깊은 고뇌에 빠졌을 때, 책망의 음성이 들려왔다. 네가 그동안 묵상해온 수많은 시간들에 비해 삶으로 나아가는 일에 너무나 미적거렸다. 아는 만큼 행동하지 못했다.
그렇다.
대부분의 우리의 실패는 말씀을 잊었다거나 몰라서가 아니라 그릇된 선택에서 비롯된다. 내가 그랬다.
일찍이 갈 바를 알지 못했지만 말씀을 쫓아갔던 아브라함에게 ‘복’을 말씀하셨다. 그는 인생을 정리해야할 75세에 가나안 땅을 향했다. 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했다. 그러나 아브라함에게 현찰을 주지 않으셨다. 지금으로 말하면 일종의 어음을 주신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미래에 대해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내일을 넘어 모레를 기억했다. 영원을 향한 발걸음이었다.
오늘 본문은 3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1장1절부터 3절까지의 말씀으로 의인들의 확고한 기초에 대해 설명한다. 두 번째는 4절과5절 말씀으로 사악한 자들의 인생의 무상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마지막 세 번째는 의인들과 악한 자들을 대조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시편 1편은 복 있는 사람과 의인들 그리고 죄인들의 내용과 결말을 비교해 놓았다.
시편을 읽으면서 지난날에는 인간의 모습이 보였다면 다시 시작하는 시편은 주님의 모습이 보인다. 복 받는 사람을 넘어 복이 되라고 말씀하셨다. 이 일을 위해 아브라함의 씨로 이 땅에 오신 그분이 보였다.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창세기 22:18
오늘 율법을 즐거워하는 사람이라는 말은 이 땅에 말씀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이라는 말이다. 주님을 즐거워하고 주님의 행적을 더듬으며 주님을 닮아가는 삶이 바로 복 있는 사람이다.
복의 근원이요 뿌리이신 ‘복 있는 그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하며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