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40;5-23
원망이나 미움이 없는 사람은 평안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은 자신감이 있습니다. 두 관원장의 꿈은 두 사람을 위한 꿈이라기보다는 요셉을 위한 꿈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크든 작든 모든 역사의 중심은 구속사이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들리고, 내가 보는 모든 사건들은 내가 알고 깨달아야 하는 나를 위한 사건인 것 같습니다. 나의 사건으로 알기 위해서는 사람에게 관심이 있어야 하고, 잘 들어주고, 잘 해석해 주어야 합니다.
오늘 옥에서 요셉이 목자가 되어 목장을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은 남의 얼굴빛도 잘 살피고, 관심으로 물어봐주고, 잘 들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말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마음으로, 진심으로 체휼하고 공감해주는 마음으로 들어주어야 합니다. 요셉이 오늘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꿈과 모든 사건의 해석은 하나님께 근거한 말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연이 어디 있습니까? 작은 것이라도 하나님께 아뢰고 묻고 가야할 것입니다.
두 관원장은 꿈을 자세히 있는 그대로 말하고, 요셉은 군더더기 없이 명료하게 말합니다. 말이 많지 않습니다. 내가 목장에서 말이 많습니다. 지금은 줄었지만 목자 초기에는 말이 너무 많아, 어느 집사님이 목장의 반은 목자님 말이라고 한 적도 있었습니다. 정말 주저리 주저리 영양가도 없는 말을 그렇게 많이 했습니다. 내가 잘났다는 표현이었는지, 내 열심을 알아달라는 것이었는지, 내 말이 맞다는 주장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말이 많아서 스스로 나에게 '말 금지' 처방을 내린 적도 있었습니다. 아마도 나의 많은 말에 상처를 받은 분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참 많이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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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말이 많은 연약함이 있었지만, 요셉은 사람에게 부탁하고 의지하려는 연약함이 있습니다. 당신 일이 잘 풀리면 나를 생각해달라고, 나를 여기서 건져내달라고 사람에게 부탁하지만, 끝 부분에 보면 요셉을 잊었다고 합니다. 사람은 잘 들어주고 잘 이해해주는 사랑의 대상이지, 기대하고 믿을 대상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요셉의 연약함이 틀렸다는 것이 아닙니다. 요셉도 자신의 신세와 형편을 같이 나눕니다. 잘 들어주고 자신의 처지도 같이 나누는 것이 목장이지만, 사람에게 바라고 기대할 것이 별로 없습니다.
목장에서 좋은 해석을 하면 듣는 이도 좋고 목자도 좋습니다. 하지만 항상 좋은 해석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떡 맡은 관원장의 얘기도 있고, 듣기 싫고 하기 싫은 해석과 처방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건과 환경은 구원을 위해 유익한 것입니다. 목장의 결론은 내 죄를 보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잘 풀리는 해석도, 망하는 해석도 결론은 회개입니다. 회개가 최고의 유언이라고 합니다. 목장은 날마다 최고의 유언이 이루어지는 곳이어야 합니다.
회복하여 복직되는 환경도 목장에서 듣고, 나무에 달려 뜯어 먹히는 해석도 목장에서 듣고 모두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회개로 끝나면, 구원으로 결론 나는 인생들이 될 것입니다.
세상 인생들은 먹고 마시고 죽이고 살리는 모든 행사를 자신들의 계획과 뜻대로 하는 줄 알지만, 그들의 행사는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에 따른 구속사의 장식품에 불과합니다.
사람은 기대할 것이 없고 믿음의 대상은 더욱 아닙니다. 잘 들어주고 잘 이해해주고 사랑해야 할 대상일 뿐입니다.
주님.
요셉이 목장을 잘하지만 자기 욕심이 있습니다.
나는 나를 드러내기 위해서인지 말을 많이 했습니다.
그 말로 상처 받은 사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들을 치유하시고 살려 주시옵소서
나의 입술의 말을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Jesus Name Amen
적용> 오늘 잘 들어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