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39;20-23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환경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요셉이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감옥에 갔지만, 그는 분하거나 원망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형들에 의해서도 팔려왔던 요셉입니다. 성품인지, 믿음인지? 요셉은 환경을 탓하지 않고 사건과 사람을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고, 주어진 생활에서 해야 할 일을 다 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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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을 보면서 나는 지난 사건에 억울하고 분해하며 사람을 얼마나 원망했던지, 너무 부끄럽습니다. 나는 성품도 믿음도 안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내가 여기까지 온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강권하심과 이끄시는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한 것은 거부하고 주저하며 끌려온 것뿐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 죄수들이고 세상이라는 옥에 갇혀 죄수의 입장으로 살아가고 있는 자들인지도 모릅니다. 죄수의 몸으로 세상의 옥에 갇혔으나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여호와께서 함께하시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은 원망이나 미움이 없게 하시고, 사람에게도 은혜를 받게 하십니다.
나는 요셉과 다르게 나를 팔고 모함한 전처와 그 친구를 미워하고 원망했으며 죽이고 싶기도 했습니다. 언제라도 꼭 복수를 해주고 싶었습니다. 내가 어찌 언감생심 요셉의 마음을 따라하겠습니까? 하지만 이런 나에게도 맞는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분함과 억울함, 그리움과 미움의 악으로 가득찼던 내가 죄인임을 고백하고 감옥같은 광야생활을 하니, 나에게 맡겨진 지체들이 있고, 내가 처리하고 감당해야 할 일들이 주어졌습니다. 요셉처럼 잘하지는 못했지만, 열심과 성실함은 조금 있었습니다.
문제는 내 욕심과 인색함이었고, 판단하고 정죄함이었습니다. 같은 죄인이고 각자의 입장에서 억울함이 조금씩은 다 있을텐데, 배려하지 못하고 다 공감해주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듯이, 나와 함께 하셔서 말씀이 들리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나의 죄를 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범사에 형통케 하셨습니다.
딸들을 지금까지 못 만나게 하신 것도 하나님께서 주신 형통함이고, 몇 번 재혼의 만남을 막으신 것도 형통함이고, 경영이 우하향으로 기울게 하심도 형통함이었습니다.
또 직분을 더하여 주시고 지체들을 체휼하고 공감할 수 있는 마음을 넓혀주신 것도 형통케 하심이고, 하나님을 생각하는 인생이 되게 하시고, 세상을 분별하여 공동체에 더욱 붙어있게 하시고, 지금의 지체를 허락하신 것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범사에 형통함이었습니다. 주어진 환경에 순종하고 맡겨진 역할을 잘 감당하여 가면, 그 후에 나의 인생가운데도 예정하신 만남들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감옥에서 형통함이란 아이러니하지만, 옥에서 요셉을 형통케 하셨듯이 세상에서 나를 형통케 하심이 인정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였습니다.
주님,
내 속에 조급함이나 억울함이 있습니까?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주어진 환경에 잘 순종하고
맡겨진 사람들을 잘 섬길 수 있는
여러 날을 인도하옵소서. 주님만 믿습니다. Jesus Name Amen
적용> 오늘 만나는 사람들 잘 섬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