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 28일 목요일
스가랴 13:1-9
“그날에 3”
그 날 이전의 이스라엘의 모습은 참담함 그 자체였다. BC587년 나라가 멸망했다. 지도층 인사들을 중심으로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다. 우여곡절 끝에, 70여년이 흐른 후에 무너진 예루살렘을 재건하기 위해 귀향민들이 돌아왔다. 황폐한 예루살렘 성전을 바라보며, 통곡했다.
그들의 우선순위는 예루살렘 성전을 속히 재건하여 다시금 하나님의 영광을 되찾는 것이었다. 잊혀 진 옛 다윗 왕조의 부활을 꿈꾸었다. 그렇게 예루살렘 귀향민들은 절박한 마음으로 성전 건축을 시작했다. 기초 공사가 마무리 되었을 때, 성전 재건은 중단 되고 만다.
당시 제국들의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겪을 수밖에 없었던 망국의 설움, 예루살렘과 유다 지역에 살고 있던 이방인들의 지속적인 괴롭힘과 방해, 경제적 궁핍, 무엇보다도 암담한 현실 속에서 분투하는 자신들에게 어떤 도움도 주지 않는 것만 같은 하나님에 대한 실망과 회의 등, 참담하고 절망적인 현실과 상황에 좌절하고 말았다.
이러한 막막한 현실 앞에서 스가랴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그림을 그리신다. 하나님 나라의 청사진이었다. 죄가 관영한 땅에 샘물이 솟아났다.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주민을 위하여 열리리라” 스가랴 13:1
그날에 죄가 드러났다. 아무도 모를 것 같았던 은밀한 죄까지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거짓 예언자들이 밝혀지고 정신 못 차린 아들이 헛짓거리 하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고 칼을 들어 찌르는 비극적인 일이 벌어졌다. 경건의 훈장처럼 자해했던 흔적들이 오히려 부끄러움이 되는 날이다.
그 날에 전 세계가 심판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갔다. 온 땅의 삼분의 이가 멸망하게 된다. 그리고 남은 삼분의 일도 불 가운데로 던져진다. 그곳은 정금을 뽑아내기 위한 용광로였다.
구원이란 단어는 위기 또는 심판이라는 현실을 배경으로 쓰는 말이다. 환란의 도가니에서 순결한 백성을 만드신다. 비로소 하나님께서 하나님 되심을 노래하는 백성들이 드러나게 된다.
그 날은 여호와의 날이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심판과 영광이 드러나는 날이다.
바로 그 날이 600년의 시간을 지나 이 땅에 이루어졌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수난과 제자들의 흩어짐을 스가랴 13장을 인용하셨다.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바 목자가 양떼를 치리니 다 흩어지리라 하느니라.” 마태복음 26:31
우리의 구원은 선물이지만 값비싼 대가를 치르신 주님의 십자가를 통해 주어진다. 황폐한 땅, 성전재건의 꿈이 사그라진 막막한 현실 앞에 주님께서 등장하셨다. 이것이 은혜이다.
“샘물과 같은 보혈은 주님의 피로다 보혈에 죄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 정하게 되겠네 정하게 되겠네 보혈에 죄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
찬송가 258장을 부르며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