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직한 공무원을 꿈꾸며
경기도 수원시 정현철
성장과정 나는 전라남도 광양군 광양읍 사곡리에서 4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내가 태어 난지 6살 되던 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59년 당시 시골이 어려웠듯이 나 또한 집안에서 막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소를 먹이는 것을 돕거나 겨울이면 나무를 해오는 것 뿐 이었습니다. 어렸을 적에는 막내라 가족과 특히 어머님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습니다.
놀 곳이 흔하지 않았던 그 당시에 크리스마스 계절이 오면 집에서 가까운 교회에 가서 연극도 하고 노래도 불렀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게 다가옵니다. 간혹 친구들과 어울려서 뒷동산에 올라가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위하여 숨바꼭질을 하기도 하며 숲으로 산으로 달렸던 아름다운 기억이 있기도 합니다. 어렸을 적에는 그냥 무언가 열심히 하면 되겠지 하는 심정으로 열심히 살았던 모범생(?)이었습니다.
광양중학교에 입학하여 나름대로 열심히 하였다고 하였는데 순천에 있는 순천고등하교 입학에 떨어지게 되어 처음 시련이 나에게 왔습니다. 한창 사춘기 시절이라 부끄럽고 창피하여서 광양농고에 진학을 추천 해 왔지만 어린 마음에 농고에 가도 내가 별로 할 것이 없을 것 같아 형님이 계시는 성남으로 올라왔습니다.
형님도 학교를 어떤 학교를 가야 좋을지 잘 모르고 아는 사람도 없어서 성남에 있는 신일상업전수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취직을 하려고 부기, 주산 등을 열심히 하였지만 3학년이 되자 취업이 안 되어 성남에서 종로 2가에 있는 입시학원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가정 형편이 여의치 않아 단과 학원에서 칠판 닦는 일을 하면서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나름대로 공부를 하였지만 재수, 삼수를 해 보았지만 워낙 기초실력이 없어서 좋은 대학교에 진학을 하지 못하고 군대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파주에 있는 전방에서 철책근무를 하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대학교에 가고자 기초부터 차근차근 공부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제대 후에도 도서관에 다니면서 대학교를 가고자 노력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집안 형편도 어려워서 생각한 것이 공무원을 하면서 공부를 지속해야겠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들어온 것이 나의 공무원생활 시작이었습니다.
공무원 생활 1984년도에 9급 공채시험에 합격하여 7월 2일부터 수습기간을 거쳐 1985년 1월 7일에 정식으로 행정직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수원시청 사회과에서 처음 발령을 받고서 생활보호대상자 자녀 중학생 수업료 지급을 하면서 처음이라 잘 몰라서 전임자가 한 것을 그대로 답습하여 해 오던 중 경기도에서 감사가 실시되어서 감사관으로부터 왜 이렇게 했느냐는 질책을 받았습니다. 오후에는 너무 힘이 들어서 사무실에도 가지 않고 그만 두면 되지 않겠냐고 하는 나를 붙들어준 선배공무원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또한 조금 더 경제적 여유를 찾고자 동요의 권유로 주식을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조금 수익이 났으나 결국에는 많은 인생수업료를 지불하고서 주식을 이제는 하지 않습니다. 주식이라는 것이 돈이 많이 왔다 갔다 하는데 거기다 탐욕스런 마음으로 사무실에서 업무와 주식을 병행하다 보니 일도 잘 안되고 주식도 잘 안되어서 공무원은 주식을 하면 좋지 않겠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토록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할 수 있다는 방송통신대를 지원하여서 입학을 하였지만 그해에 선거를 실시하여서 명부를 한자로 쓰고 투표통지표도 한자를 쓰는 등 선거 업무에 종사하다 보니 공부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렇게 어려웠던 시절에도 공부를 한 동료들도 있음을 알고 더욱더 노력하지 않는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였습니다.
행정직으로 근무하던 중 인천, 부천 세무 비리사건으로 세무직이 신설되었는데 수원에 연고도 없기도 하고 새로운 직종으로 가면 승진도 빨리 해 주겠다는 말을 믿고 세무직으로 93년도에 바꾸었습니다. 물론 운명적으로 세무과에서 근무를 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고 그렇지 않는 부서에 근무하는 사람은 시험을 보고 전직을 해주었습니다. 세무직으로 바꾸어서 주사 때까지는 행정직 동기들과 거의 선두에서 승진을 하였지만 사무관 승진대상에서는 조금 늦게 승진을 하게 되었습니다.
세무직 공무원 하는 중에 나름대로 열심히 하여 시장상, 도지사상, 행정자치부 장관상을 받았습니다. 2015년도에는 지방세수증대, 시민홍보, 자원봉사 등 열심히 근무한 공적을 인정받아 수원시 공무원대상을 수상하는 영광도 받았습니다. 내가 잘 해서 받은 것이 아니라 동료들의 협조와 사랑으로 이루어낸 결과물들입니다. 내 자신을 돌아보건 데 조금 더 일을 열심히 하였으면 더 좋은 성과를 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아 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늦게나마 사무관 승진을 하게 되어 내 자신이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후배들이 승진하여서 와서 업무 지시를 하면 괜스레 자신이 싫고 조직이 싫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공무원 조직을 떠나지 않으려면 묵묵히 맡은 바 일들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러한 과정을 통과하면서 승진을 못하고 조직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이 넓혀졌다고 생각을 하며 그들에게 다가가서 대화를 해 줄 마음도 생겼습니다. 장말이지 인사는 만사이며 조직에 활성화를 이루는 인사를 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공직 사회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시장님의 방향이 이러한데 거기에 반하여 꼭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서울대학교 취득세, 재산세 부과문제로 세무과에서 어려움을 많이 겪었습니다. 고유목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서울대학교 부지에 대하여 과세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이 들지만 서울대학교 부지를 이용하고자 하는 수원시와 협의할 여러 가지 일들을 대하여 시장님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문제는 감사원에서 최종적으로 세금 부과 문제의 적정성을 다루게 될 것입니다.
사무관 승진 입교를 하면서 설렘과 희망을 갖고 입교를 하여 교육에 임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희생한 영령을 모신 국립현충원에 참배를 갔습니다. 참배를 하면서 국가와 민족을 생각하는 숙연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곳에는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목숨을 바쳤던 선열들의 고귀한 숨결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내가 왜 이 자리에 와 있는지를 생각해 보며 나 자신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참배를 마치고 충남 보령에 있는 비체팰리스 호텔에서 숙소를 정하였고 오리엔테이션으로 2박 3일간의 과정에 들어갔습니다. 먼저 가져간 짐을 호실에 내려놓고 숙소로 돌아와 공무원으로서 가져야 할 마음열기, 나부터 변화는 시작된다는 강의를 들으면서 사무관으로서의 다짐을 하였습니다.
가치성찰, 가치 확립, 리더십의 실현, 조화와 화합의 마당으로 마무리 하였습니다. 우리는 경기도 동료들과 5명이 한조로 방을 쓰게 되었는데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좋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호텔에서는 전망이 가장 좋은 곳에 숙소가 있어서 보기만 해도 가슴이 확 트였습니다. 모세의 기적을 나타내는 축소판인 ‘무창포의 기적’인 바닷길에서 조개를 줍는 분들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경기도 공무원에서 연수가 계속되었습니다. 민법, 행정법 2개 과목은 객관식 시험으로 시험에 대한 부담감이 많이 있었지만 그래도 가르치는 교수님들이 재미있게 설명을 잘 해 주어서 무사히 잘 치를 수 있었습니다. 교육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교육은 한국인재인증센타 대표인 송수용님이 이야기한 들이대기 전법을 들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서 내 자신이 인생을 살아오면서 자존감과 자신감이 부족한 나에게 새로운 도전을 주었습니다.
다시 완주군에 있는 지방행정연수원에서 4주부터 6주까지를 공부하였습니다. 그동안 지역 간 떨어져서 공부를 한 동료 사무관들이 다시 모여서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경기도에서는 객관식 문제였지만 여기서는 주관식으로 지방자치, 지방재정, 공공갈등관리, 행정법에 대하여 문제를 내주었습니다. 75분, 두 과목씩 2회를 갑자기 쓸려고 하니 손이 아파서 간신히 문제를 풀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틀 동안 역량교육에 대한 발표 및 평가를 실시하였습니다.
현장 학습시 같은 분임원들끼리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서울시가 근대화에서 현대화발전 과정을 보면서 우리의 60년대 어려웠던 생활상을 새록새록 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인사동을 거쳐 북촌 한옥 마을을 거쳐 청와대 앞을 걸으면서 북한관계 및 국가의 이익을 위하는 길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곤지암리조트에서 1박을 하였는데 화담(花潭)(구본무회장의 아호)숲을 거닐면서 LG그룹의 구본무회장께서 아름다운 숲길을 조성하느라고 무진장 애썼음을 알았습니다. 이름 모를 나무와 꽃 들을 많이 식재하였으며 고추나무, 생강나무 등 희귀한 이름들로 인하여 분임원들과 대화를 하면서 좋은 경관을 관람하고 사진도 찍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용인 휴양림에서도 목공예 체험을 하여 아름다운 선반을 만드는 좋은 경험을 하였습니다.
* 서경덕(화담(花潭) : 독학으로 사서육경을 연마했으며 정치에 관심을 끊고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에 일생을 바쳤습니다. 평생 여색을 멀리했는데, 개성의 유명한 기생 황진이는 그를 시험하고자 교태를 부리며 유혹하였으나 꿈쩍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인품에 감격한 황진이는 그를 스승 겸 서신과 시문을 주고받는 사이로 남았습니다. 스승 없이 독학을 한 학자로도 유명하며, 박연폭포, 황진이와 함께 송도삼절의 하나로 꼽힙니다.
교육이 오후 5시 정도에 끝나면 분임원들과 식사 및 교제를 하였고 분임원들과 약속이 없었을 때에는 수원시 직원들과 식사 겸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함께 모이면 술을 마시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때로는 직장생활의 애환과 경험을 공유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조금 더 세련된 대화로 발전해 나갔으면 하는 바램의 자리이기도 하였습니다. 대부분의 동료들이 골프를 치려고 시간들을 내었지만 나는 사실 골프를 배우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동료들과 함께하지 못한 시간들이 있어 아쉬웠습니다.
분임 발표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발표자의 자세를 보고, 발표 내용을 경청하면서 발표하기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연습하는 노력이 많았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과연 나라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떨리지 않고, 특히 원고내용도 보지 않고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습니다. 앞으로 임지에 돌아가면 많은 주민 앞에서 이야기할 기회가 많을 터인데 대중 앞에서 이야기 하는 방법도 미리 배워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엊그제 공무원을 시작한 것 같은데 벌써 32년째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지만 그래도 뭔가 부족한 느낌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사무관이 공무원의 꽃이라고들 말은 하곤 합니다. 그냥 지시만 받고 일만 하는 주무관의 자리가 아니고 이제는 자신이 책임을 지고 일을 해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과연 내가 서있는 자리에서 잘 하고 있는 것일까?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지나온 나의 실패한 모습 속에서 나로 인해 자존감이 많이 무너져서 남 앞에 서기가 두려울 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매일 1장씩 묵상을 하고 말씀과 기도를 통해 매일 새로운 힘을 얻어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나를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하여 준 것도 날마다 나 자신을 새롭게 해 주는 신앙의 힘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가 살아온 인생은 그 누구도 나와 같을 수는 없는 특별한 인생임을 기억하려고 합니다. 다시 생각해 보면 내 인생이라는 것이 내가 가꾸어나가는 것이며 결국 인생이 마라톤임을 알기에 나는 오늘 최선을 다하며 살려고 노력을 할 것입니다. 내가 남긴 발자취를 모델로 하여 따라올 후배들을 위하여 좋은 기억으로 남는 공직생활을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얼마 남지 않는 공직생활을 사무관으로서 멋지고 아름답게 펼쳐나가 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