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27;41-28;9
에서가 스스로 왕따(스따)가 되었습니다. 에서는 잘나고 강해서 다른 사람들을 왕따시켰습니다. 그리고 핀트가 전혀 안맞는 적용을 합니다. 너무 몰라서 일러주어야 하는데, 속에 화가 많고 원망과 미움이 많아서 들을 수가 없습니다. 에서는 축복을 다 빼앗기고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남아 있습니다.
에서는 후회와 저주와 미움을 넘어가지 못하고 야곱을 죽이기로 합니다. 그 때가 이삭이 죽을 때라고 정합니다. 잔인하기가 이스마엘 못지않습니다.
나는 전처보다 그 친구를 죽이고 싶었습니다. 내 복을 뺏앗아간 그 친구를 원망하며 죽음 같은 망함을 바랬습니다. 어제 오늘 나에게 에서같은 성정이 있음을 너무 잘 보게 됩니다. 그럼에도 내가 야곱처럼 택자의 인생을 산다는 것이 이해할 수 없는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밉고 죽이고 싶은 마음을 가슴에 품고 살면 내가 먼저 죽게 될 것입니다. 그 미움의 칼에 나의 인격이 다 찢겨질 것입니다. 미움은 결국 상대를 죽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오픈을 해야 합니다. 가슴속에 있는 미움과 환란과 원통의 응어리들을 모두 오픈해야 합니다.
아마도 내가 우리들교회에 와서 목장에서 내 속의 응어리들을 털어내지 않았다면 여전히 미움의 칼을 갈며 죽어가는 에서로 살았을 것입니다.
에서의 원한을 리브가가 듣게 됩니다. 불택자 에서는 세상의 길로 가지만, 택자 야곱은 구원의 광야 길로 갑니다. 내가 광야로 피신을 왔습니다. 처음에는 막연하게 광야 생활을 2년만 하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면 나에 대한 미움도 걷히고 두 딸도 만나고 회복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리브가의 생각이었고 내 생각이었습니다. 분노와 미움으로 영혼과 육체, 믿음과 세상 둘 다 잃을 수 있기에 내가 광야로 떠나는 것이 맞았습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불신결혼을 피하기 위함이었고, 궁극적으로는 구원의 계획 때문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미움과 분노 가운데 서로 믿음도 없이 죽고 죽이는 생활은 불신 결혼의 악함을 끊어낼 수가 없었습니다. 리브가의 말대로 불신 결혼은 보이는 것과 다르게 재미가 없습니다. 허무한 기쁨이었습니다. 물론 사랑도 소망도 없었습니다. 평생 죽도록 보이기 위한 연기만 하다가 무대가 끝날 인생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믿음이 있다면 살아내야 하겠지만...
그래서 내가 쫓겨나듯이 떠날 수밖에 없었는지 모릅니다. 내 속에 다 꺼져가는 예수 씨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같은 이삭의 마지막 당부과 축복이 불신결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누구와 신결혼 하라고까지 합니다. 엄청난 신결혼의 축복을 듣고 야곱이 홀로 고독한 광야의 길을 떠나갑니다.
내가 쫓겨나듯 떠나지 않았다면 여전히 에서의 삶을 살며 꺾이지 않는 내 생각으로 살고 있을 것입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아닐지라도 유사그리스도인 이스마엘을 적용하며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내가 유사그리스도인인 줄도 모르고, 성경끼고 교회 다니고 있으니 나 좀 축복해 달라며 위선을 떨며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광야로 내 몰아 살게 하신 것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의 대박인생이었습니다.
주님.
복을 다 잃었으면서도 분별하지 못하는 에서가 나에게 있었고
힘든 광야 낯선 곳으로 던져진 야곱도 나에게 있습니다.
나는 에서를 품고 야곱처럼 살려고 했었습니다.
지금을 잘 분별하며 가야할 길을 가도록 인도하옵소서
나를 지켜주옵소서. Jesus Name Amen
적용>오늘 목장에서 여전한 광야 생활과 나의 여리고를 잘 나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