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큐티 본문은 마가복음 7장 24-37절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을 벗어나 북쪽의 두로 지방의 한 집에 아무도 모르게
들어가시려 하나 한 헬라여인이 알고 찾아와 그녀의 귀신 들린 딸에게서 귀신을
내어 쫓아 줄 것을 간청합니다. 예수님은 그녀와 같은 개를 먹이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심으로 그녀에게 모욕을 주십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 말을 인정하고
그 부스러기라도 먹겠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그녀의 믿음에 감동하시어 그녀의 딸을 치유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데가볼리 지방으로 가시고 그곳에서 친구들이 데려 온 한 귀 먹은 사람을 고쳐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하셨지만 그들은 이 일을 널리 전파합니다.
누가 나를 예수님께로 데려갔을까요?
나는 누구를 데려갔을까요?
저는 예수님께 부스러기라도 간청하고 있을까요?
누군가에게 그것이 물건이던 도움이던 동정이던 사랑이던 간에 도움을 구하는 것을
어려워 합니다. 분명하게 원하는 것과 바라는 것이 있지만 그것을 직설적으로 확실하게
부탁하지는 못합니다. 저도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어려서부터 무언가를 부탁하는 것은 예의에 벗어나는 것이라고 배웠고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라는 말을 듣고 자랐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성장하면서 그런 말들을 극복하거나
최소한 감사할 때와 부탁을 해야 할 때를 분별할 수 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를 못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좀처럼 부탁을 한 적이 없는데 그것은 내가 모든 것을 해결하고 처리해야
하는 것으로 굳어져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어리석은 자부심이었습니다.
나는 내 자신과 나의 진짜 능력에 대해서 의심하였기 때문에 내가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를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줘야만 했습니다.
도움을 전혀 청하지 않고 나 스스로 대해서 솔직하거나 겸손하지 못함으로써,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없었고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사랑과 애정을 가진 어떤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다는 허세와 체면 뒤에 항상 숨어서 나
자신을 가리곤 했습니다.
그 결과, 스스로의 감정처리를 하는 것에도 익숙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감정적인 도움이
필요한 것을 알고도 그 때에 알맞은 대응을 하는 것 또한 능숙하지 못합니다.
귀머거리이며 말을 더듬는 사람처럼 저는 오랜 시간동안 감정의 덫에 갇혀 있다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소통을 잘 할 수 없고 다른 사람의 의견 역시 잘 받아들일 수 없게 되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저는 감정적으로 미련하고 적응력이 부족한 사람이었습니다.
교만에서 나오는 침묵으로 인해서 곤란해지는 경우가 당연하게 생기는데, 비록 내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에 대해 알고는 있지만 그것을 (감정적으로) 친절하게 온유하게 매끄럽게
잘 적용하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가끔 어떻게 내가 친구를 가지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놀라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이런 저를 예수님께서 긍휼히 여기셔서 내가 원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의 한국인
아내를 만나도록 하셨습니다. 결혼생활에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아내도
나를 인정해 주었고 일 년의 시간이 걸렸지만 아내는 저를 우리들교회로 이끌어 주었고
거기에서 저는 내 귀를 닫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 듣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 죄를 보면서 나에 대한 것을 말하고 나누는 것을 배우게
된 곳도 바로 우리들교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저를 자유롭게 풀어주셨습니다.
이제는 예수님께 부스러기 은혜를 구하는 것까지도 배우고 있습니다.
언젠가 성령이 충만한 더 큰 은혜를 신실하게 구하는 날이 오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적용: 성장하고 있지만 아직은 부스러기의 은혜가 필요한 함께 일하는 선생님들중 한 사람과
좀 더 많은 나눔을 하겠습니다.
주님! 내가 너무 교만해서 온 우주의 창조주이신 나의 주 하나님의 도움을 청할 수 없는
마음이 되지 않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나와 나의 믿음의 형제들이 좀 더 당신에게 가까이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