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212 (금) 저 ‘바람’
(마가복음 4:35-41)
오늘 말씀을 묵상하는데, 참 이상합니다. 그 전에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것이 떠오릅니다.
‘바람'?
설 연휴 제주여행을 다녀와서 그 세찬 ‘바람’만이 생각날만도 하건만...
이 ‘바람’이 아닌, 저 ‘바람’만 생각이 납니다.
제가 치과를 전공할 때는 이빨만 보이더니,
이제 귀를 전공하면서는 귀만 보이는 것처럼....
‘바람’이 흔한 교회에 다녀서 인지, 저 ‘바람’이 더 익숙합니다.
그래서인지,
바람이 ‘큰 광풍(37)’이 되어 죽게 생겼다고(38) 하는 집사님이 생각납니다.
그야말로 그 가정의 배(37)가 가라 않을 것 같아 너무 힘들어 하십니다.
정말로 이렇게 힘들 때, 예수님은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는 것과 똑 같습니다.
그런데, 이때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우는 것이 내가 살 길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자고 있는 나의 신앙을 흔들어 깨우라고 하십니다. 모양만 크리스챤인 내가 새롭게 깨어나야 한다고 하십니다. 말로만 예수님 하지말고 행동으로 보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믿음 있는 줄 알았는데, ‘나의 믿음 없음(40)’을 깨달으라고 하십니다.
그때, 그 바람이 잔잔해 진다고 하십니다.
그러면,
바다도 그대로, 떠 있는 배도 그대로, 모든 것이 변한 것이 없어도...
모두가 살고.. 평안을 누릴 수 있다고 하십니다.
나의 ‘바람’은 무엇일까?
저 ‘바람’이 없을 것이라고 무조건 장담할 수도 없을 것 같고...
혹시, 나도 모르게 내가 되고 싶은, 뭔가 세상적인 그 ‘바람(to be)’이 아닐까?
그것이 광풍이 되어, 나의 두려움이 될 수도 있음을 느낍니다.
사는 길은....
나의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우는 일’...
‘큐티’ 그리고 ‘적용’입니다.
적용) 금년 국내외 학회 발표, 초청에 무조건 응하는 욕심을 줄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