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큐티 본문은 마가복음 2장 1-12절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으로 돌아오십니다. 많은 무리의 사람들이 예수님이 계신 집으로
모여들어 현관을 가득 채우고 입구까지도 막습니다. 중풍병 환자를 메고 온 네 명의
남자들은 지붕을 뚫고 자신들의 친구인 그 환자를 예수님께 줄로 달아 내립니다.
예수님은 그의 죄가 용서 받았다고 말씀하시고 상을 들고 집으로 가라고 이르십니다.
탐탁히 여기지 않던 몇 몇 율법 교사들을 포함해서 모여든 모든 사람들에게 놀라운
이적을 행하십니다.
당신은 어떻게 집에 가십니까?
당신은 어떤 죄로 인해 중풍 병이 들었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을 읽으면서 “집”이라는 말에 관심이 갔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의 ‘집’으로 돌아오셔서 치유 받은 중풍 병 환자에게 ‘집’으로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진정한 집은 물론 하늘에 있으며 그 분의 이 땅으로 오심은 말로는
할 수 없는 은혜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땅에서 예수님은 사도 바울과 같이 먼 곳으로 여행을 하지는 않으셨고
마태복음 말미에 말씀하신 것과 같이 온 땅을 우리의 집과 같이 만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회당이나 집이나 야외에서나 배 위에서나 산상에서나 어디에 계셔도
집과 같이 편안하게 여기셨지만 저는 그렇지를 못합니다.
오늘 말씀은 내가 편안하지 못한 이유가 나의 죄 때문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중풍 환자처럼 죄로 인해서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친구들에 의해서
옮겨져야만 했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하나님의 용서가 있어야 합니다.
어른으로 성장하면서 아주 많이 여기 저기 돌아다녀서인지 이 세상에서의 집에
대한 강한 향수가 없습니다. 캐나다 오타와에서 태어나서 한 살 때 벤쿠버로
이사를 했고 학교에 들어갈 무렵에는 프랑스로 이동했습니다.
다시 캐나다 동부 해안 쪽으로 이사를 했고 5년 뒤 다시 오타와로 돌아왔습니다.
아버지가 군에 계셨기 때문에 군 기지 근처에 살았습니다. 어른이 되어서 선생님이
되면서 캐나다, 미국, 인도에 살았고 그리고 지금은 한국에 살고 있습니다.
유일하게 편안하게 느낀 곳은 학교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늦게까지 학교에 있게 되나 봅니다.
가버나움에 있는 예수님의 집이던 베드로의 집이던 그 곳이 어디가 되었던지 죄의 사함을
얻기 위해서는 믿음이 그 지붕을 뚫고 들어갑니다. 중풍 병자가 줄에 달려 낮게 내려왔기
때문에 그는 양육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있는 학교에서 나를 마비시키는 나의 죄 때문에 계속해서 낮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을
겪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 나를 마비시키는 죄가 때로는 교만일 때도 있고 남의 사정을 공감하지 못하는
마음일 수도 있으며 무서운 분노일 수도 있고 완벽함도 없이 일을 잘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하는 심하게 눌리는 두려움 일 수도 있습니다.
내가 직접 모든 것을 하거나 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교만이 나의 죄 중의 하나입니다.
이 교만이 평생 저를 마비시켜왔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나에게는 나를 돕기 위해 데려가 줄 친구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적용: 나에게 가장 심하게 스트레스를 주는 것을 파악하고 주변에 도움을 구하도록 하겠습니다.
주님! 제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시고 나를 믿음의 성령으로
채워주셔서 당신에게 반복해서 부르짖을 수 있도록 하여 주옵시고 나의 약한 부분에는
당신의 힘과 거친 부분에는 인도하시는 도움의 손길을 항상 구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