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3일 수 막1;21-28
갈릴리에서 4명의 제자를 얻으시고 첫 사역지 가버나움에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께도 공동체가 중요했고 함께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까지 듣도 보도 못한 예수님의 교훈에 놀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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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놀라움은 내가 우리들교회에 와서 말씀 듣고 놀란 것과 비슷할 것입니다. 기존 서기관들의 가르침만 듣던 사람들이 살아있는 말씀을 듣고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우리들교회에 와서 말씀의 적용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습니다. 삶속에서 말씀이 살아 역사하는 것입니다. 나는 첫날부터 눈물을 흘리며 놀라지는 않았습니다. 그 때는 분함과 억울함에 눌려 강퍅했을 때였습니다. 하지만 나는 점점 말씀에 빠져들기 시작했고 놓치기 아까워 메모하기 시작했으며, 특히 수요예배는 기가 막히게 큰소리로 들렸고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기존의 율법적이고 판에 박힌 서기관들이나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타협하는 말씀들과는 같지 아니함을 알 수 있었습니다. 구속사를 꿰뚫는 말씀의 본질을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이전에 들었던 말씀들과 달랐고, 내 마음이 녹고, 옥죄었던 것들이 하나 둘씩 풀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뭇 사람들이 그의 교훈에 놀라는 것이 이해가 됩니다.
그 놀라운 말씀을 들어도 내 속에 더러운 귀신들을 쫓아내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듣기는 들어도 말씀의 권위가 나에게 온전히 세워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귀신들은 안 쫓겨나려고 발악을 했던 것 같습니다. 나는 욕심과 정욕을 도려내기 위해 몸살을 알았습니다. 그러면서 속에서는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고 싶다는 항변의 유혹이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세상친구들과 재미있게 놀지 못하는 것은 내가 왕따 당하고 외톨이 되어 더 멸망하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멀어지는 친구들과 내리막의 매출과 외로운 시간들이 너무도 싫었지만, 한편에서는 예수님을 다시 알게 되었고 이제 더 이상 예수님을 외면하고 뒤로 던져버리듯이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결혼과 인생의 목적은 거룩이라는 것을 귀에 딱지가 앉게 들었습니다. 해결 안되는 정욕과 채우지 못하는 욕심과 길이 안보이는 외로움은 이따금씩 나에게 몸서리쳐지는 경련처럼 찾아왔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것들이 잠잠하여져 갔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고독을 말씀으로 즐기기도 하였습니다. 어쩌다 만난 친구들은 나보고 어찌된 거냐, 얼굴 좋아졌다는 말을 합니다.
말씀은 나에게 권위있는 새 교훈으로 들어왔고, 내 속에 있는 욕심 정욕 미움 음란 분노 등의 귀신들이 순종하여 물러간 것은 내 체험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였고, 미신과 징크스가 많았고, 돈과 행복이 목적이었던 가버나움같은 나에게 예수님이 찾아와 고쳐주신 소문이 사방에 퍼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