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1일(월) 막1:1-11
지금은 마지막 때라며 주님이 다시 오실길을 예비해야 한다며 회개의 복음을 선포하였을 때, 저의 설교를 듣는 자들이 그 절박한 외침에 귀 기울이는거 같았을 때, 제가 놓쳤던 게 있었음을 오늘 말씀을 통해 깨닫게 해주십니다.
말씀을 전할 때는 세례 요한처럼 주의 오실 길을예비해놓고, 강단에서 내려와서 성도들로부터 “인상이 참 좋다. 참온유하고 겸손한 분이셔요.” 등의 인사를 들을 때마다 “아니에요” 하면서 웃었던 나는 그렇게 물로 세례를 베푸는 설교를 하면서도 인사말로 하는 칭찬에, 때로 알면서도 기분 좋게속으면서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실 예수님의 자리에 있고 싶었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던 거 같다.
마땅히 “나는굽혀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7절)고했어야 했는데 주 예수님의 이름과 복음의 능력마저도 이름난 유명한 목사님들처럼 나도 영성 있고 능력 있는 목회자로 인정받고자 하는데 나도 모르게이용하고자 했던 무시무시한 죄가 숨어있는 줄도 몰랐던 거 같다.
성령으로 세례가 임하기 위해서 세워진 권위와 질서에순종했어야 함에도 “회개하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않는 교회와 담임목사님마저도 비판하고 비난하며 정죄했기에 사역 가운데 말씀대로 참된 복음의 역사가 시작되지 못했음을 깨닫는다.
THINK 양육교사로 섬겨주시는 집사님의 반복되는 권면으로 어제는 고2가 된 아들이 가정예배 인도를 했는데
그 동안과는 달리 얼마나 즐거워하는지 모른다. 예배인도자가 되어 자기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르는 맛을 보아서인지예배 내내 얼굴에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미혼모였던 엄마와 태어나서 9년을 사는 동안 세례 요한 같은 엄마의 질서에 순종해 와서일까?
하나님께서 나에게 특별한 방법으로 주신 이 아들을사랑하시고 기뻐하심이 전해진다.
그렇지만 혼자 아들을 키우며 힘든 시간을 절박함 속에 주님과 보낸 엄마의상황 때문인지 어려서부터 엄마를 따라 스파르타 식으로 새벽예배부터 금요철야는 물론 각종 세미나와 수련회를 따라 다녀야만 했던 아들에게는 그 모든것들이 사춘기가 되자 엄청난 스트레스였던 거 같다.
가정예배 시간에 엄마의 나눔이 조금만 길어지면(내가 봐도 심하게 길게 하긴 하지만) 한숨을 푹푹 쉬던 아들이 이제는“제발 좀 그만 좀 하라!”고 세례 요한이 되어 외친다.
그랬던 아들이기에 어제 주일저녁 가정예배를 인도하며아들이 보인 미소는 의미심장하다.
내가 목사입네 하고 양육교사 집사님의 말씀을 무시했더라면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하나님께서 예배 때 보여준 아들의 미소를 통해 “준아,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내가 너를 기뻐한다.”라고 말씀하신 거 같다.
아들에게성령으로 세례가 임할 수 있도록 내가 받아야 할 세례는 무엇인지 계속 주님께 여쭤야겠다.
양육과제를통해 지속적으로 골육친척의 구원을 위해 애통해해야 한다는 내용을 듣게 되는데 역시 그를 위해 내가 받아야 할 세례는 무엇인지 구해야겠다.
하나님 아버지, 세례요한처럼 회개를 외쳤지만 제 주제를 모르고 온유하고 겸손하게 웃으면서 예수님 자리에 있고 싶었던 저를 불쌍히 여기셔서 병을 주셔서라도 제 자리를 찾게하신 은혜에 감사 드립니다.
제 평생 소원이 한 영혼을 사랑하는 목회자가 되어 한 영혼을 사랑하는 사람들을세우는 것인데
이를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물 세례뿐 임을 알게 하옵소서.
주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지 않으면 불가능한일임을 가슴 깊이 깨닫게 하옵소서.
성령으로 세례가 임하기 위해서 제가 받아야 하는낮아지는 세례의 사건과 시간들을 억울하다고, 하나님이 옳지 않다고 하지 않게 하옵소서.
영혼구원, 그 한 가지 목적이 오늘 하루도 제 삶의 중심을 다한목적이 되게 하시고 이를 위해 존재를 다한 순종이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