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믿으면 행복해질까?
이 말은 우리가 예수님 믿고 살아가면서 늘 고민하는 문제입니다.
네가 믿는 예수님이라면 나도 믿겠다는 말을 우리는 들어야 합니다.
이 책의 저자 이철환은 끔직한 이명과 어지럼증으로 16년 동안이나 고생을 하면서 그래도 작가로서 현재의 위치를 잘 고수하고 있습니다.
에필로그에서 비록 지금은 형편없는 믿음을 가졌지만 언젠가는 하나님의 은혜로 신실한 자녀로 거듭나고 싶은 신앙고백을 썼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KBS방속국의 피디로부터 연탄길 작가 이철환 작가님을 TV에 초대하고 싶어서 전화를 했다는 말에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후로는 하나님이 날개를 달아주셔서 방송이 나간 후에 연탄길이 430만부가 팔렸으며 대학교와 기업체에서 강의도 셀 수 없을 만큼 들어왔습니다.
하나님은 이철환 작가를 어둠속에서 일으켜주셨을 뿐만 아니라 자신만을 위하여 살지 않고 하나님을 위하여 살도록 인도를 하셨습니다.
장로회 신학대학교에서 초청을 받아서 장편시를 많이 외운 것 같은데 외운 성경말씀을 들려줄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당황하여 대학생시절에 영어를 공부하기 위해 영어로 로마서 5장을 외우고 있었는데 그 이후에 잘 외우지 않아 똥배짱으로 외운 것을 발표하였는데 한결 품의가 높아진 것 같았습니다.
샤르트르의 실존주의 보다는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더 많은 공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람은 사랑할 수 때문에 살아갈 수가 있고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서 사는 것이라는 톨스토이는 말을 하였습니다.
우리도 사랑이 있기기 때문에 소리 없이 우리 같은 다녀간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 하루를 살아 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명과 어지럼증으로 고생하여 죽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어떻게 살아갈지 막막했던 시절이 지났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하고 기도도 하지 않던 때도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처방해준 약을 먹고도 잠들 수 없었을 때에 성경위에 손을 얹어 놓으면 잠들 수 있었고 크고 강한 힘이 나를 치유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해 주었습니다.
절망의 시간 동안 한 번도 읽지 않았던 성경을 다시 읽고 기도도 하기 시작했습니다.
병원에 있는 동안 많은 것을 깨닫게 히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고막을 찢을 듯 들려오는 이명이 괴롭더라도 더 이상 이명에 끌려 다니지 않겠다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하였습니다.
더 이상 걸음을 걸을 수 없을 만큼 어지럼증이 두렵더라도 더 이상 절망하지 않겠다고 눈물을 흘리려 하나님과 약속을 하였습니다.
눈물을 흘릴 때 똑 같은 아픔을 느끼며 내 곁에서 눈물을 흘리신 분이 주님이심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기쁨을 느낄 때도 슬픔을 느꼈을 때도 함께 하신다는 고백을 하게 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고백을 하게 됩니다.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고 싶다는 입속에 지렁이를 만들어 놓은 모습이 나의 모습입니다.
영원할 수 없는 것에 영원을 기대하는 나의 어리석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의지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요?
고난이 닥치면 ‘예수님, 예수님’ 하고 울부짖다가 고난이 사라지고 나면 예수님을 멀리하는 죄인입니다.
예수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세요?
단순함이 좋을 때도 있지만 단순한 해석이 우리를 혼란스럽게 할 때도 많고 단순한 생각으로 이런 저런 낭패를 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우리의 삶이 단순하지 않기 때문에 그러므로 분별력을 가지려면 때때로 우리 안에 있는 생각의 틀을 부수어야 합니다.
생각의 틀이 되어 버린 고정관념과 편견을 때때로 버릴 수 있어야 우리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하나님을 믿으면 내가 당한 슬픔을 이전과는 분명히 따른 방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똑같은 상황의 슬픔을 당했다 해도 올바른 신앙을 가지 사람은 빨리 회복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바라보면 슬픔을 통해 이전과는 분명히 다른 의미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슬픔을 바라보는 내 생각의 틀을 하나님이 바꾸어 놓으시기 때문입니다.
아내와 딸의 잘못을 들추어내는 잘못을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은 제 마음 깊은 곳에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저는 저의 허물을 알지 못했고 저의 잘못을 고백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제 마음 깊은 곳에 하나님이 계셨기에 저는 저의 잘못을 고백할 수가 있었고 잘못을 고백하면서 가족들과의 사랑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보다 하나님을 제대로 믿는 것이 훨씬 더 어려웠다는 사실입니다.
올바른 신앙을 갖는다는 것이 지금도 제겐 참으로 어렵기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쓰러지고 쓰러지면서 내게로 오는 거라고 쓰러져도 괜찮다고 나만 잊지 않으면 된다고 말입니다.
기도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아도 기도를 포기 하지 않는 것 그것이 믿음이라고 배웠습니다.
헨리 나우웬이 제시한 세 가지 방법 중 성경말씀을 묵상하지 않고서는 하나님께로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내면 깊은 곳으로부터 들려오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조용한 시간을 갖지 않고서는 하나님께로 갈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신뢰하는 마음으로 영적인 지도자에게 순종하지 않고서는 하나님께로 갈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 기대어 인간과 세계 사이에 놓여 있는 침묵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 그것이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쉽게 예측할 수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고 정확히 읽어낼 수도 없는 수많은 삶의 상황들, 그것들을 오직 예수님께 기대어 예측하고 설명하고 읽어 내는 것, 그것이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오렌지의 행기’를 그리는 것, 그것이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오렌지의 향기’를 그리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믿음이란 증명할 수도 없는 것들을 믿고 결코 확신할 수 없는 것들에 헌신하는 것을 뜻합니다.
믿음 안에 사는 사람은 우리의 이성에 반대되는 것들을 신뢰한 채, 불충분한 증거만을 가지고 앞으로 나갑니다.
<로마서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기도하는 자는 결코 불행해지지 않으며 행복해 집니다.
지금도 저의 신앙은 어린 새의 모습을 닮았습니다.
순수를 간직한 어린 새의 모습이 아니라 철딱서니 없는 어린 새의 모습이지만 예수님을 믿음으로 나는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