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큐티 본문은 히브리서 12장 1-13절 말씀입니다.
아볼로는 우리들에게 인내로써 믿음의 경주를 하며 죄의 얽매임으로부터 벗어나서 끝가지
인내함으로 마지막까지 견디신 예수님을 바라볼 것을 권면합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본보기는 우리에게 힘을 줍니다. 우리가 끝까지 고난을 참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아들이신 예수님에게 한 것과 같이 대해 주셔서 우리의 영원한 축복을 위해서 잠시
징계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자녀들을 어떻게 훈육하십니까?
당신은 부모님으로부터 어떤 훈육을 받았습니까?
저는 끔찍이도 말을 안 듣는 아이였습니다.
분명히 저는 아빠로부터 체벌을 많이 당했을 것인데, 기억나는 것이 없습니다.
한 가지 기억나는 것은 프랑스에서 엄마와 함께 있었을 때의 일입니다.
추운 날이었는데 윗옷을 입지 않고 밖에 나가 놀고 싶었습니다.
밖에서 체크셔츠만 입고 놀고 있는 아이를 가리키면서 내 주장을 합리화했습니다.
엄마는 그 아이이의 엄마가 신경을 쓰지 않아서 그가 옷을 저렇게 입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아이의 엄마는 그에게 점심으로 설탕 한 주먹만을 주는 그런 엄마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 엄마는 자식을 전혀 사랑하지 않는다고 엄마는 단정하셨습니다.
어쩔 수 없이 옷을 입고 나가야 했지만 그 아이의ㅣ 선택이 나보다 더 나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 자신은 아이들을 잘 훈육하지 못했습니다. 일관성이 없었고 지나치게 거칠거나 지나치게
관대하거나 해서 전혀 균형을 이루지 못한 모습이었습니다.
이렇게 된 이유 중 일부는 아이들을 개별적으로 다루지 못하고 일괄적으로 모두 똑같이
다루려고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이들은 항상 다른 형제들과 비교하면서 자신의 징계에
대해서 공평하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공평하지 않아요.”라고 아이들이 말하는 것은 “나는 특별대우를 받고 싶어요.”의 다른
표현입니다.
저의 양육이 일관성이 없었던 또 다른 이유는 그 징계에 대한 분명한 목표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훈련시키시는 목적은 나의 구원과 그의 거룩함에 참여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저는 예의와 자립심과 좋은 성품과 같은 덕목을 인간적인 목적으로 아이들에게
가르쳤습니다.
그들의 구원을 목적으로 아이들을 양육하지 못했고
하나님을 위해서 그들을 훈련시키지도 못했습니다.
나 스스로 아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훈련을 하도록 하지 못했고
대부분 나의 인간적인 방식으로 그들을 가르쳤습니다.
결과적으로 저는 아이들에게 이기심과 교만을 훈련시킨 것이었습니다.
저는 잘못된 양육의 태도에 대해서 그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적용: 내가 하는 모든 훈련과 양육에 대해서 구원을 위한 일관된 목표를 갖도록 하겠습니다.
주님! 바람에 휘는 갈대가 아니라 주님의 기준에 따라 흔들리지 않고 서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