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 15일 금요일
요한복음 4:27-42
“물동이를 버려두고”
신앙생활을 시작하면서 생수의 강 되신 주님을 영접한 후 갈증이 사라졌다. 온 세상이 기쁨으로 충만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예수 믿으시라고, 믿으셔야만 한다고 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감격의 시간이 멈추었다. 세상과는 또 다른 목마름이 찾아왔다. 그 단서 하나를 오늘 말씀에서 발견했다.
오늘 주님이 배부르신 이유는 여인의 배부름을 보았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것을 나눌 때 배부르다는 영적원리를 배운다. 그녀의 목마름이 멈추자 주님께서 배부르셨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또 다른 갈증이 있다면 그것은 전도하지 않아서 생긴 영적 비만이거나 고지혈증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제는 이기적인 신앙생활에서 벗어나 이타적인 자리로 나아가야한다. 그것이 이웃을 사랑하되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가 살길이다.
빛 되신 주님을 만나자 자신의 과거가 환히 드러났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수치가 아니라 자유였다. 그녀를 얽매고 있었던 죄의 사슬이 벗겨졌다. 그녀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달려가 동네방네 외쳤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정오에 물 길러 나왔던 여인의 과거가 더 이상 그녀를 구속하지 못했다.
양식을 구하러 동네에 들어갔던 제자들이 돌아왔다.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고 했다. 그들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저주 받은 땅을 밟기조차 거부했던 유대인들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 요한복음 4:9
그녀의 고백대로 보이지 않는 삼중의 장벽이 있었다.
첫째 둘째는 외부적인 한계였다. 국경과 인종이라는 장벽이었다.
그리고 스스로 구원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한 가련한 여인의 마음의 장벽을 허무셨다.
‘나 같은 자가 어찌 구원 받을 수 있을까?’
自暴自棄(자포자기)한 인생이었다. 모든 사람의 시선을 피할 만큼 그녀는 고립되어 있었다. 감히 주님께 나아오지 못할 인생을 찾아가셨다. 그리고 그녀의 내부에 잠재되어 있는 하나님 나라의 그리움을 끄집어 내셨다. 주님의 품으로 그녀를 안으셨다. 이것이 은혜이다.
토인비가 “그 바람은 유럽의 운명을 싣고 갔다”라고 증언했다. 이 말은 사도 바울이 마게도니아 환상을 보고 유럽으로 작은 배를 타고 떠나갈 때 한 말이다.
오늘 수가성 우물가 사마리아 여인을 향한 의도적인 주님의 발걸음이 바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한 사랑이었다.
지금 이 지구상에는 24,000족속으로 구성된 70억 가까운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그중에 아시아에 살고 있는 사람들만 40억이 넘으며 이중에 기독교인은 1억이 채 되지 않는다. 위도 상으로 10/40 창문지역에 약 22억의 사람들은 슬프게도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아직도 모르고 있다. 이 상황은 우리의 선교가 얼마나 절실히 요구되는가를 말하여 준다.
오늘 내가 내려놓아야 할 물동이는 무엇인가를 돌아보자. 그리고 죽어가는 수많은 영혼들을 향하여 달려가자. 오늘도 목마름에 시달리고 있는 자들에게 생수 되신 주님을 전하자. 그것이 영적비만에서 벗어나 참 자유와 기쁨을 얻는 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