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 14일 목요일
요한복음 4:16-26
“사마리아 여인을 부르시다”
관원이었던 니고데모가 주님을 찾아왔다면 사마리아 여인을 의도적으로 찾아가셨다. 저주받은 땅, 저주받은 여인을 만나시기 위해 사마리아로 향하셨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 11:2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이사야 1:18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이사야 55:1
말씀을 읽으면서 숨이 가빠온다. 크게 심호흡을 해본다. 밀려오는 감격을 주체할 수 없었다.
모든 유대인들이 포기한 땅이었다. 밟기조차 거부한 땅이었다. 그 사마리아를 향하여 주님께서는 발걸음을 옮기셨다.
주님께서는 ‘오라’고 하신다. 그 부르는 대상이 죄인이요, 목마른 자들이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이었다. 그러나 오늘 주님께서는 자신의 발로는 차마 나아올 수 없는 가련한 여인을 만나시기 위해 모든 사람들이 터부시하는 사마리아를 방문하셨다. 그리고 그녀를 우물가에서 기다리셨다.
입원조차 할 수 없는 환자에게 왕진을 가신 것이다.
두레박을 들고 있던 그녀에게 생수를 주겠다는 주님의 제의는 가당치 않았을 것이다. 야곱의 우물을 가리키며 조소하였다. 그래도 그녀가 붙들고 있었던 하나는 자신들의 조상이 야곱이라는 썩은 동아줄이었다.
사악한 여인의 가슴에도 예배에 대한 갈구가 있었고, 그리스도를 향한 그리움이 있었고, 죄로 가리워진 영원에 대한 갈급함이 있었다.
똑같았다.
거듭나야 한다는 주님의 말씀에 사람이 어떻게 사람이 다시 태어날 수 있느냐고 반문했던 니고데모처럼, 그녀 역시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해달라고 했다. 주님은 영적인 일을 말씀하셨는데 두 사람 모두 물질적인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니고데모에게 구원과 영생을 말씀하셨다면 사마리아 여인에게 참된 예배를 가르치신다.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이 한마디에 그녀는 이실직고하게 된다.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라는 그녀의 고백은 처절하였다. 뒤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허겁지겁 살아왔던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너에게 남편이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 되도다”
자신이 그토록 감추고 싶었던 과거가 낯선 유대인에 의해서 까발려졌다. 그녀는 그제서야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영적인 세계로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자를 찾고 계시는 하나님을 소개하셨다. 그리심산도 아니고 예루살렘도 아니라고 하셨다. 진정과 영으로 드리는 예배를 기다리신다고 하셨다. 주님께서는 사마리아 땅에서 참된 예배자를 찾으셨다. 이것이 은혜이다.
오늘도 모두가 가기를 거부하는 땅을 보라고 하신다. 저주받은 땅에서조차 버림받은 저주받은 여인을 향하여 나아가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말씀하신다.
네가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