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 5일 화요일
요한복음 1:25-42
“이튿날(1)”
예루살렘에서 파견한 정탐군들이 돌아간 바로 그 다음 날이었다. 주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러 요단강으로 나아오셨다. 그때 세례요한은 한 눈에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한복음 1:29b
그는 영원의 나라에서 이 땅에 오신 주님을 알아보았다. 다니엘이 힛데갈 강가에서 그토록 꿈꾸었던 하나님 나라였다. 그분이 요단강가에서 세례요한의 눈에 나타난 것이다. 그를 부르셨다. 그리고 그를 요단강에 서게 하셨다. 그분께서, 말씀하신대로 자신의 눈앞에 주님이 서계셨다.
독사의 자식들아! 일갈하던 그의 모습은 온대간대 없었다. 예수님의 신발끈을 매는 것조차 감당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것은 지나친 겸손이 아니었다. 주님 앞에만 서면 왜 나는 작아지는가? 유행가 가사처럼 알면 알수록 크신 분임을 아름답게 고백한 것이다.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 요한복음 1:33-34
그의 이러한 고백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보여준다. 그 역시 처음에는 주님을 알지 못했다. 성령께서 주님의 위에 머무는 것을 보고서야 예수님의 정체를 알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을 만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가슴을 열어보여 주실 때만 가능한 일이다. 내가 주님의 손을 잡은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내 손을 붙들어 주셨다. 이것이 은혜이다.
간발의 차이로 스쳐 지나간 정탐군들은 주님을 보았어도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요한의 손에 세례를 받는 그분을 그리스도라고 인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 눈에는 평범한 촌부에 지나지 않았을 테니까.
세례요한은 자신의 본분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다가와 환호를 보낼 때, 자신의 존재 이유를 명확히 밝힌다.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요한복음 1:31
그는 변함없이 주님을 가리키는 표지판이 되기를 자청했다.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였다. 오늘 동일하게 주님께서 요청하신다. 내가 다시 오는 날을 기억하라고 하신다. 그리고 땅끝까지 가라고 그래서 제자를 삼으라고 하신다. 가르쳐 지키는 나라를 건설하라고 하신다.
광야 같은 겨울이다.
아무도 없을 것 같은 광야 같은 세상이다.
그럼에도 외로이 주님을 증거 하는, 나는 오늘 세례요한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