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어제는 신년축복성회로 안민교수님의 은혜로운 말씀을 들었습니다. 안민교수님은 서울대학교 음악대학교와 대학원을 졸업하였으며 고신대 교수, 코스타 강사, 사직동 교회........장로님이십니다.
<마태복음 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렇게 아름다운 교회에서 강사로 초청을 받아 예배를 드리게 됨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저는 고신대 교수를 25살에 시작하였으며 그때에는 나이가 어려서 빨리 서른 살이 되고 싶었습니다. 저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교수님은 어떻게 됩니까? 라고 묻는 것이 부담이 되었습니다.
긴 20대를 보내자마자 30대가 왔고 40대가 훌쩍 지나갔으며 이제는 50대라는 캘린더를 보자 충격이 왔습니다. 가슴은 20대인데 60대를 바라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싶었습니다, 제 나이가 58세입니다.
저는 음대 갈려고 기도한 적도 없었고 생각도 못하고 자랐습니다, 저의 어릴 때에는 기타를 치거나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이럴 때 아버지께서는 의사가 되어서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잘살면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 시대에는 지금의 나처럼 음악을 한다는 것은 상상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초등학교 때에 여름성경학교에서 첫 출전하여 7명중 1등을 하였습니다. 그 이후에 교회에서 음악은 내가 독차지 하였습니다. 거룩한 성을 솔로로 부르면 어른들이 예루살렘하면서 후렴을 하는 정도였습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 내가 부른 꿈에도 소원을 통일 등을 마이크를 듣는 것은 감동이었습니다.
중학교 때에는 보조 교사로 지휘도 하였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반장도 하였으며 경남고등학교 교육위원회 주최로 콩클대회에서 아이들이 네가 나가서 해보하고 하여서 나갔습니다. 그러자 음악을 전공하려고 공부하였던 아이들이 시샘을 하였습니다,
의사가 되기를 원하시는 아버지 밑에서 음악을 한다는 말을 꺼낼 수가 없었습니다. 12월 중순쯤에 가슴 한편에서 의사가 되면 어떻게 될까? 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물론 돈을 잘 벌어서 잘 살 수 있지만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일로 인하여 며칠을 엎치락뒤치락 하면서 잠을 자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음악을 하는 교수를 찾아갔습니다, 노래 하나를 불러 보라고 하여서 평소에 내가 찬양대에서 불렀던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러자 어머니 모시고 오라고 하면서 레슨비가 한 달에 4만원이 든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첫해 등록금이 11만 원 정도 이었으니까 상당한 금액이었습니다.
그 때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6식구가 방한 칸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너무 너무 음악이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용기를 내서 아버지 제가 음악을 할려고 하는 데 레슨비가 필요합니다, 라고 말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불이 번쩍 났는데 성령님이 내려주신 불이 아니고 아버지의 몽둥이 세례를 받고 절대로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번에는 어머니를 조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아침저녁이면 잠도 거의 못자는 일을 며칠간 하였습니다. 그러자 아들 녀석 하나 죽이겠다고 생각한 어머니께서 레슨을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교수님 한번 만나주셔요? 라고 하여서 레슨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럴 때 협박하면 안 되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레슨비를 벌기 위하여 아버지, 어머니께서는 새벽에 들어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자동차 정비회사에 경비로 들어가서 일을 하였습니다. 지금도 경비하시는 분을 보면 그 때가 생각이 나서 명절 때면 고기를 사다 주곤 합니다. 그러자 경비가 우리 차는 제일 좋은 데로 대주고 잘 봐 주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피아노로 공부를 하였지만 나는 풍금을 누르면서 공부를 하였습니다, 입시가 다가와서 아는 형님이 사는 망우리로 갔더니만 학교 가는데 3시간 정도가 걸렸습니다. 아버지는 민아 너는 떨어질 확률이 100%였으므로 실망하지 말아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음을 잡아서 의과대학 공부를 하라고 하였습니다,
발표를 보기 위하여 12시간 걸리는 완행열차를 타고 부산에서 올라왔습니다. 지금이야 컴퓨터로 바로 알 수 있지만 그 때에는 합격자를 보려면 명단을 확인해야 하는 것입니다. 차례로 이름을 보자 내 번호가 안 보였습니다. 그래서 다시 보았더니 맨 위에 내 이름이 있었습니다, 수석 합격이 되는 것을 보는 순간 눈물이 흘렀고 우리 집에 전화를 하자 안 받으셔서 어머니 회사로 전하를 하였습니다,
‘엄마! 나 합격했어 그 것도 일등으로 합격했어’ 정말이야! 어머니도 소리 내어 울고 있었습니다. 40년 세월이 흘러갔지만 그 때의 감동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입학을 하고 나서 가난뱅이들이 오지 않는 곳이라는 것을 실감하였습니다. 우여곡절을 겪은 후에 군대 갔다 오고 고신대학교에 스카우트돼서 이태릴 유학도 갔습니다.
내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부모님의 눈물의 기도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습니다. 부모님의 밤새 기도하는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우리 민이 살려서 좋은 음악가가 되게 해주셔요? 라는 기도가 나를 여기에 오게 하였습니다. 대책이 없는 가난을 우리 부모님들은 희생을 감수하면서 살았습니다.
졸업식 때에는 부모님이 조퇴하고 나오셨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기도하고 떠나셨지만 어머니는 울고 있었고 아버지는 울음을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지금도 기차를 탈 때면 그때의 눈물 자욱이 생각이 납니다. 기차 시간이 거의 다 되어서 부모님을 이별할 수가 있었습니다,
내 아들이 27살에 공군을 갔는데 나는 눈물이 안 날 줄 알았습니다, 조국은 아들이 지키겠습니다. 라는 말을 하고 들어갈 때에 아버지가 생각이 났습니다, 어느 해 12월 중순에 빨리 내려오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아버지는 며칠 전에 쓰러지셨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왜 이렇게 치료를 하지 않으셨냐고 물었습니다. 아버지는 본인이 몸이 아프셨지만 알리지 않고 참아내셨습니다. 아픈 것을 알리면 공부를 중간에 포기하여야 하며 아무것도 되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며칠 후 의식이 돌아오셨지만 ‘민아 자신이 없다. 어려움은 어머니에게 맡기고 너는 공부하는 것을 절대로 포기하지 말아라.’ 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천국에 가셨습니다. 학교생활 중에 이과에 다니는 학생이 둘이 있는 곳에 아르바이트를 하였습니다. 수2가 이렇게 어려운지는 몰랐지만 가르쳐보니까 알 수 있었습니다, 밤이 맞도록 공부를 하여서 아들을 가르쳤습니다.
그 집 주인인 윤씨가 저를 이뻐해 주셨습니다. 전도를 하였더니 믿음이 놀랍게 성숙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새벽기도를 가자고 하여서 4시 30분에 갔습니다, 제가 밤늦게 공부를 하는데 미칠 지경이었지만 전도한 죄가 있는지라 아무소리 못하고 함께 다녔습니다.
어느 날 기도하는데 안민아 너는 불평이 많은 것 같은데 그러지 말고 ‘네가 가진 것을 내놓아’ 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뭐가 있어야 내놓죠. 라고 따졌습니다. 그러고 남들은 부모님 잘 만나서 나이트클럽 가서 마음껏 즐기고 살아가는 데 나는 어쩌란 말이냐는 불평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새벽기도 시간에 예수님 부르자 통곡이 나왔습니다.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습니다. 한 시간 후에 햇살이 비쳐오고 마음이 편안해 지시 시작하였습니다. 네가 가지고 있는 것 가지고 나를 위해서 사용해 보라는 음성이었습니다.
여자들 중에서 할머니들에게 인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할머니들이 있는 양로원에 가서 찬양을 부르기도 하고 주물러 주었습니다. 아내 정진희 권사와 같이 노방전도를 하였습니다. 한번은 아버지만 믿지 않는 사람을 방문하였습니다. 물 컵을 던질 정도로 과격하였지만 노래를 두고 불러주자 마음이 풀려지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한센병자를 돕기 위하여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왜 날 사랑하나’ 등의 아내와 함께 불러서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고아원, 양로원, 군대 등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는 갔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아버지의 말씀 ‘절대로 포기하지 말아라.’ 라는 말을 모토로 삼고 살아왔습니다. 최연소 교수, 부총장 등 위치가 바뀌기 시작하였습니다. 정부기관들, 기업체 등에서 나를 초정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기업체에서는 엄청 돈을 많이 주었습니다.
제가 사역하는 모습을 선교기간에서 2,000세트로 복사해서 전국에 나의 허가도 없이 뿌렸습니다. 그 결과 미국에 다녀왔고 세계 6여 개국에서 초청이 왔습니다. 저는 방위 출신인데 해군 작전사령부에도 가서 전하였습니다. ^^^^^ 하나님이 ‘네가 가진 것으로 나에게 주어라’ 는 말을 실천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중앙교회에도 서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저가 사람 살리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인지 저는 알 수 없습니다. 가난하고 키도 적은 나를 사용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나를 인도하신 예수님이 정말로 좋습니다. 이 세상이 거들떠보지 않은 사람들을 위하여 찾아오신 예수님을 본 받아 저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저는 어머님과 장모님을 모시고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실망하여 고기를 잡는 베드로를 찾아가셨습니다. 고기를 한 마리도 못 잡은 베드로에게 다가가셔서 고기를 구우셨습니다. 사랑하는 시몬아 넌 날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내 양을 먹이라, 치라, 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베드로는 예수님의 사랑을 깨달아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역을 하였습니다. 우리가 없는 것을 탓하기보다 우리가 가진 것으로 충성하는 모두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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