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 4일 월요일
요한복음 1:19-28
“네가 누구냐?”
거룩한 떨림이 내게는 있느냐.
세례요한은 자신이 기다리고 만났던 예수 그리스도를 어떠한 존재로 알고 있었는지가 오늘 내게 큰 도전으로 다가왔다. 그는 주님을 신발 끈을 매는 일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분이라고 소개했다. 너는 주님을 어떻게 알고 있니? 오늘 예상치 못한 사도요한의 질문에 당황했다.
주님께서 갈릴리 바다에서 다시 만난 베드로를 향해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이나 거듭해서 물으셨던 그 음성이 내게 들렸기 때문이다.
네가 누구냐?
나는 한 여자의 남편이자 두 아이의 아버지입니다. 교회 관리인이고 청지기회에서 서기로 섬기고 있습니다.
그것밖에 없니?
재차 묻는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어렵게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고백할 수 있었다.
오늘 예루살렘에서 파송한 자들이 세례요한에게 다가와 물었다.
너는 누구냐?
그들은 헤롯처럼 메시야를 기다렸다. 그리스도에 대한 관심이 아니었다. 하나님을 섬기려는 선한목적이 있었다기보다는 자신들의 종교적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베다니까지 사람을 보낸 것이다.
세례요한은 예사롭지 않은 차림으로 광야에서 석청과 메뚜기를 먹으면서 천국이 가깝다고 외쳤다. 그리고 회개하라는 그의 외침은 광야를 넘어 중앙정부가 있는 예루살렘까지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입소문을 듣고 광야로 몰려왔다.
이러한 군중들의 소요에 그들은 민감하게 반응한 것이다.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요한복음 1:20
세례요한은 그들의 물음에 그는 거침없이 답변했다. 나는 메시아가 아니다.
가릴 것이 없었다. 선지자도 아니라고 했다. 그는 당당한 목소리로 외쳤다. 나는 단지 그를 가리키는 손가락에 불과하다. 나는 물로 세례를 주지만 그 분은 성령으로 세례를 줄 것이다.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곧 내 뒤에 오시는 그 이라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요한복음 1:26-27
그들은 헤롯처럼 메시야를 기다렸다. 그들은 ‘너희 가운데’ 바로 자신들 앞에서 서계신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다. 이런 비극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같은 시대를 살았고 그분에게 세례를 베풀었던 요한의 증언이었다. 가장 가까이서 확인하였다. 혈육이었다. 그럼에도 태초부터 계신 말씀으로 이 땅에 오신 주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받아들였다. 신발끈조차 풀어드릴 수 없다는 너무도 위대하신 주님이라는 고백 속에 세례요한의 ‘거룩한 떨림’을 보는 것이다.
영접하기만 하면 곧 그 이름을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는 말씀에 감사와 감격까지는 있었는데 오늘 ‘신발끈’이라는 단어에 걸음을 멈춘다. 그리고 크게 심호흡을 가다듬는다. 온 우주가 내 마음에 들어왔다. 어찌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너는 누구냐?’라는 질문에 거룩한 떨림으로 내 자신 하나님의 자녀 됨을 그리고 하나님의 부요하심을 깨닫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