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30일 수요일
다니엘 11:36-12:3
“그는”
숨 가쁘게 전개되는 부침의 역사의 현장에서 ‘그’에 대해서 다니엘에게 말씀하셨다.
우상숭배가 극에 달했다. 하나님의 자리를 찬탈한 자들이 일어났다. 스스로 높아졌다. 그는 달변가였다. 청중들의 마음을 훔쳤다. 전쟁에서도 그는 승승장구하였다. 탈취한 재물은 그의 나라의 경제를 일으켰다. 그는 화려한 궁전을 바다와 거룩한 산 사이에 세웠다. 그는 누가 보아도 성공자였다. 대대적인 토목공사를 통해 부를 과시하고 자신의 업적을 후세에 남기려고 했다. 그러나 그의 성공에는 한 가지 단서가 불어있다. 그의 형통은 하나님의 인내가 끝날 때, 흔적 없이 사라질 것이다.
시편 73편은 악인의 형통을 바라보며 가슴아파하던 아삽의 시이다.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하며” 시편 73:3-4 심지어 악인이 죽을 때까지 평안했다고 했다. 이러한 아삽의 고민은 시편 73:17절에서 그 비밀이 풀린다.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본문을 읽으면서 내 자신 속에도 똑같은 죄악이 숨겨져 있음을 보게 된다.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잠언 3:6
여기서 ‘범사’라는 단어는 모든 일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라는 말씀이실 텐데 내가 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일은 내 맘대로 결정하였다. 그것이 지나쳐서 본의 아니게 주님을 외면하게 되었다. 겉은 그리스도인인데 속은 철저하게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으로 굳어져 갔다. 안과 밖이 다른 이중적인 삶을 즐긴 것이다. 어느새 이러한 일탈은 주님을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보험정도로 여겼고, 나의 삶을 담보로 세상과 하나님 나라 사이를 오고가는 위험한 줄타기가 계속되었다.
기도의 자리가 낯설어졌다. 고개만 숙이면 주문처럼 외우던 기도가 자취를 감췄다. 중언부언하던 기도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니 불안할 수밖에.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나 역시 힛데겔 강가에 서있다. 개인적인 어려움이 닥치자 공허했던 마음의 빈자리에 비로소 간절함이 채워졌다.
‘그’가 추구하던 것을 버리자 세상을 향한 시선을 거둘 수 있었다. 좁은 문이 보이고 하나님 나라가 마음에 들어왔다.
내가 고민하던 모든 일들을 주님께 맡겼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부르시는 주님 앞에 나아갔다. 거추장스럽던 형식을 벗어던지고 나의 고민을 상담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나의 마음속에 평안이 밀려왔다.
세상이라는 전쟁터에서 성도가 추구해야할 으뜸은 동분서주가 아니었다. 오직 하나님을 향한 시선임을 배운다.
종말에 개국 이래로 그때까지 없었던 큰 환난이 일어날 때, ‘생명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다. 또한 죽은 자들이 일어나 영생과 영원한 수치로 나누어질 것을 예언하셨다. 구약에 등장한 부활과 심판을 말씀하신다.
다니엘서의 결론을 기록하시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다니엘 12:3
복음을 선포하신다.
‘땅 끝에서 세상의 끝’을 바라보는 자의 복이다.
번민에서 벗어나 비로소 홀가분하게 하룻길을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