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28일 월요일
다니엘 11:2-19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마태복음 24:15
오늘 등장하는 남방왕과 북방왕과의 꼬리를 무는 전쟁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나는 이 예언의 말씀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문맥상 의미 하나를 고른다면 세상의 어떠한 강대한 세력도 끝내는 무너진다는 사실이다. 영원한 것은 없다는 평범한 진리이다.
냉전시대를 살았던 지난 날, 철의 장막이라고 불렀던 옛 소련이 무너지고 철옹성처럼 보였던 공산권이 붕괴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낙후되었던 중국이 어느새 신흥강국으로 부상하고 미국이 세계를 제패하고 있는 오늘날도 다니엘의 말씀은 유효한 것이다.
한때 칼 마르크스의 사상이 젊은 지식인들에게 전염병처럼 퍼져나갔지만 불과 한 세기만에 그들의 허상이 잦아들고 있지 않은가. 영원한 사상도 없고 과학이 증명한 진리 같았던 수많은 원리들도 계속해 바뀌고 있다.
세상의 권력 그리고 인간의 삶 역시 부침의 역사이다.
오는 본문은 오고가는 인생들의 이야기이다. 앞으로 되어 질 미래를 향한 불확실성 시대를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다. 자신들의 욕망과 만족을 위해서 징병과 합종연횡 등 수많은 술수들이 동원되고 사람들을 죽이고 죽는 전쟁의 소용돌이가 한편의 서사시처럼 기록되어있다.
오늘 다니엘은 힛데겔 강가에서 서있다. 포로가 된지 70년이 되는 해, 민족의 회복의 시기를 깨달았다고 했다. 그의 나이 팔십을 훨씬 넘긴 노인이었지만 그는 한 순간도 이스라엘의 회복을 잊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금식하며 기도했다. 이스라엘의 죄를 자복했다.
“곧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 이제 네게 알리러 왔느니라” 다니엘 9:23
그가 기도를 시작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움직이셨다. 그가 기도할 때, 즉시 소망의 빛이 비추었다. 가브리엘이 다니엘을 찾아와 앞으로 되어 질 일에 대해서 브리핑을 시작했다.
기도는 하늘 보좌를 움직이는 힘이다.
신흥강국이 일어나고 이어서 또 다른 강국에 의해서 도태되어 가는 부침의 역사의 현장을 중계하셨다. 이스라엘의 회복을 말씀하시다가 뜬금없이 열강들의 각축장을 보여주신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
유한한 인생들의 그릇된 욕망을 꾸짖으신다. 너희는 헛된 일에 인생을 낭비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회복은 세월 속으로 사라지는 국가 건설이 아니었다.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라는 촉구이시다. 근본적인 회복으로의 초대였다. 하나님 나라이다.
변하는 세상에서 썩어질 것에 목매달고 살아가는 인생들에게 변하지 않으시는 영원하신 하나님 나라를 말씀하신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이시다.
목마른 인생이었다. 남자에게서 길을 찾던 여인이었다.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현재의 남자도 남편이 아닌 불행한 여인을 만나시기 위해서 뜨거운 여름날 정오 수가성 우물가를 찾아가셨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를 때, 자기 일에 열중한 베드로는 밤이 맞도록 헛 그물질로 피곤한 아침을 맞고 있었다. 그를 바라보셨다. ‘나를 따르라, 너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며 부르셨다. 하나님 나라로 초대였다. 좁은 길이다.
다니엘을 찾아온 가브리엘 역시 전하고 싶었다. 다시 오실 주님을 그리워했다. 세상의 끝에 서야만 만날 수 있는 하나님 나라였다. 난리와 난리 속에 적그리스도가 판을 치는 세상에 마침내 종지부를 찍으시고 주님께서 다시 오실 희망의 나라이다.
오늘 우리는 세상이라는 전쟁터로 부름을 받은 십자가의 군병들이다. 크고 작은 유혹과 핍박 앞에서 복음으로 무장하고 의연하게 좁은 길을 걸어가야 한다. 승리의 하루가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