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26일 토요일
요한복음 1:1-18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요셉에게 앞으로 태어나실 예수의 이름을 미리 알려주셨다. 마태는 이름의 뜻을 명확히 기술했다.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고 하셨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최종적인 목적이었다. 하실 일이었다. 십자가이다.
태초에 세상을 만드실 때, 그 땅은 혼돈과 흑암이었다. 무질서의 땅이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생겨났다. 말씀으로 세상이 창조되었다. 질서의 나라의 시작이었다. 동일하게 오늘 요한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로 시작하신다. 하나님과 함께 계신 분, 그가 바로 하나님 자신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새 창조가 시작된 것이다.
오늘 요한복음 1장은 창조 이전의 상태에서 시작하신다. 동일한 상황이었다. 이 땅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자기 땅에 오셨는데, 아무도 그를 환영하지 않았다. 창세기의 혼돈과 흑암이었다. 모든 것이 망가진 세상이었다. 혼돈과 무질서의 땅에 요한은 복음을 외친다. 예수님을 통한 구원의 길을 선포하신다. 질서로의 복귀, 구원의 시작이었다.
요한복음 1:12절에서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하셨다. 주님을 영접하는 구체적인 내용이 ‘곧’ 그 이름 예수를 믿는 것이라는 말이다. 우리를 죄에서 건지실 분임을 믿는 것이 바로 주님을 영접하는 구체적인 내용인 것이다. 이 단순한 진리가 복음이다.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는 현대를 가리켜 ‘불확실성시대라고 명했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시대요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빠르게 도태되는 세상이라는 말일 것이다. 안개 속을 걸어가듯 내일에 대한 불안을 잘 표현한 말이 되겠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요한복음 1:12-13
그러나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진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걸어갈 길이다. 인간의 힘으로 얻은 생명이 아니었다.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않았다고 하셨다. 감정으로 되어 진 것이 아니었다. 신앙은 세습이 아니란 말이다. 사람의 생각으로 되어 진 것이 아니었다.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기에 우리의 구원은 안전한 것이다. 이것이 복음이다.
내가 주님의 손을 잡은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주님께서 내 손을 붙들고 계시기에 좁은 길을 넉넉히 걸어갈 수 있다. 이것이 은혜이다.
동시대를 살며 물로 세례를 주며 예수님 당시 유대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던 세례요한처럼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복음의 증인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