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24일 목요일
이사야 42:1-9
“보라”
이사야를 통해 눈물로 돌아올 것을 호소하였지만 남유다 백성들은 한귀로 듣고 다른 한귀로 흘려보냈다. 조금 후면 불어 닥칠 바벨론의 침공을 바라보며 새로운 길을 개척하신다. 새 일을 계획하셨다.
오늘 본문에는 ‘보라’는 말씀이 두 번에 걸쳐 나온다.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이사야 42:1
첫 번째 보아야할 대상은 ‘내가 붙드는 나의 종’이라고 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였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택했고 하나님의 영을 그에게 주었다고 했다. 이렇게 세운 하나님의 종이 할 일에 대해서 이사야는 열거하고 있다.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이사야 42:1b
그가 할 일 목록 첫 번째는 이방에 정의를 베푸는 일이었다. 이 한 줄에서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한다. 이사야의 외침 속에 나의 이름이 들려왔다. 팔레스타인 땅에서 부르는 하나님 나라 출석부에 내 이름이 있었다.
그는 결코 외치지 않는다. 웅변가는 더더구나 아니었다. 그는 조용히 대화로 다가오신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을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신다.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신다. 조용히 정의를 시행하신다.
풍전등화 같은 남유다를 향해 ‘이방의 빛’이 되시겠다고 선언하시는 하나님의 애끓는 심정을 이사야를 통해 66장에 걸친 장문의 편지를 기록하게 하셨다.
정 그렇게 말 안 듣는다면 이제 너희를 떠나 이방을 향해 나아가겠다는 최후 통첩이셨다.
하늘을 만드시고 땅과 그 소산을 주장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토록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하시는 단 하나 이유는 ‘빨리 돌아오라’며 기다리는 아빠의 마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사랑이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셨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던 날 하늘로부터 음성이 들렸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누가복음 3:21) 이사야를 통해 말씀하신 주님이셨다.
두 번째 보라!
그가 새 일을 행하신다.
옥중에 있던 세례요한이 제자들을 통해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질문을 드렸을 때 예수님의 답변을 들어보자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마태복음 11:5
상한 갈대, 꺼져가는 등불 같은 나라의 멸망을 앞두고 절망 속에 바라본 하나님 나라는 이방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셨다. 모든 사람 한 사람에게 다가오시기 위한 새 일을 선포하신다. 임마누엘이 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네가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리라.” 이사야 42:7
흑암에 갇힌 백성이었다. 죄의 포로가 되었던 자들에게 자유를 선포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세상 사람들이 표현하는 지고한 사랑, ‘천년의 사랑’을 넘어선 ‘영원한 사랑 예수 그리스도’를 힘차게 외치며 하루를 시작한다.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