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21일 월요일
창세기 11:24-12:9
“아브라함 구출작전”
오늘 등장하는 데라 가정의 이력을 살펴본다.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 그리고 하란을 낳았다.
장남 아브람의 처인 사래를 뜬금없이 불임녀라고 소개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해 큰 민족을 이루기 위해서 넘어야할 숙제가 있다는 복선이다. 데라는 장남 아브람 가정과 막내아들 하란이 죽어 조실부모한 손자 롯을 데리고 가나안을 향하여 이민을 떠난다. 그러나 중간 기착지인 하란에 머물던 데라는 그곳에서 죽는다.
멈칫하고 있던 아브라함을 부르셨다. 그를 부르시는 하나님 명령을 동사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떠나라.’ 둘째 ‘가라.’ 셋째 ‘복이 되라.’이다. 아브람이 떠나야 할 것은 고향을 떠나야하고 친척을 떠나야하고 아버지의 집을 떠나야만 했다. 당시가 혈연으로 뭉쳐진 씨족사회였음을 감안한다면 이것은 대단히 어려운 결단이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삶은 첫째 떠나는 삶이었다.
여호수아 24장 2절은 떠나야할 근본적인 이유를 이렇게 증언하고 있다.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옛적에 너희의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버지, 나홀의 아버지 데라가 강 저쪽에 거주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아브람이 떠나야 했던 젓 번째 이유는 우상으로부터의 격리였다. 우상으로 가득 찬 도시 하란을 떠나야했다. 갈대아 우르를 떠나야 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다는 말보다는 구출하셨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나 역시 떠나야할 우상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말씀의 우상이다. 몇 년 째 말씀을 묵상하면서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다. 말씀이 머릿속에만 머물고 세상으로 나오지 못하는 일이다. 적용이 없는 묵상은 삶을 풍성하게 하기 보다는 오히려 피폐하게 한다는 사실이다.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영적 비만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아브라함에 주신 말씀과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이 너무 닮았다. “생육하고 번성하라 땅에 충만하라.”의 영적인 또 다른 말은 ‘가서 제자 삼으라.’는 것이다.
아브람에게 말씀하시기를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고 하셨다.
동일하게 주님께서도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고 명령하셨다. 아브람에게 복이 되라고 명령하셨는데 주님께서는 복음을 전하라고 하신다.
믿음의 초보자였던 제자들을 향해 산에서 말씀하셨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빛이다.”
나는 소금이 아니었는데,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었는데 주님께서 그렇게 만드셨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소금 되게 하신 주님을 찬양하고 이웃을 섬기는 일이다. 빛 되게 하신 주님을 노래하는 일이다. 오늘도 땅 끝에서 주님이 부르신다.
또 하나 아브람의 삶은 예배자의 삶이었다. 그는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았다고 했다. 지금으로 말하면 교회를 세웠다는 이야기가 되겠다.
8절에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그는 예배자의 삶을 살기 시작하였다.
그가 가나안을 향해 떠날 때, 75세였다. 결코 적지 않은 나이였다. 인생을 마무리할 나이였다. 그러나 그는 말씀을 따라 나그네 인생을 선택했다. 익숙한 것으로부터의 결별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자신을 보호해주던 안락한 주거도 포기 하였다. 정든 사람들과의 이별도 가슴 아픈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주저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겼다. 좁은 길이다.
4절 ’이에‘로 출발한 그는 곧 말씀을 따라 떠나서 5절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고 했다. 그가 장막을 편 곳은 모레 상수리나무였다. 그곳에서 첫 예배가 시작되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세운 가나안 개척교회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하나님 나라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