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16일 수요일
다니엘 10:1-9
“다메섹 힛데겔”
나는 개인적인 문제로 기도하는 사람은 많이 보았다. 자신의 문제 때문에 금식하는 사람도 보았다. 그러나 앞으로 되어 질 멋 훗날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사람은 보질 못했다. 나라와 민족의 장래를 위해서 금식하며 기도하는 사람을 아직은 만나질 못했다.
고레스 왕, 삼년에 다니엘이 큰 전쟁에 관한 환상을 본다. 그는 분명히 알았고 그 환상을 깨달았다. 다니엘은 기도했다. 세이레 동안 슬퍼했다. 그는 기름진 음식을 차마 대할 수가 없었다. 얼굴에 기름을 바르지 않았다. 그의 가슴은 넓어도 너무 넓었다. 스무하루를 가슴을 열어 이스라엘을 품었다.
그는 기도 중에 그해 첫째 달 이십사일에 힛데갈이라는 큰 강가에서 하나님을 만난다. 그는 놀라운 위엄 앞에 다리에 힘이 다 없어졌고, 얼굴을 땅에 박고 깊은 잠에 빠진다.
“이 환상을 나 다니엘이 홀로 보았고 나와 함께 한 사람들은 이 환상은 보지 못하였어도 그들이 크게 떨며 도망하여 숨었느니라.” 다니엘 10:7
그리고 육백년이 흐른 후, 그분께서 사도 바울을 만나셨다.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서있더라” 사도행전 9:3,7
다니엘이 보았고 사울이 보았다. 그러나 함께 한 사람들은 보지 못했다. 다니엘은 실신했고 사울은 시각장애인이 되었다.
‘다메섹’과 ‘힛데겔’은 닮아도 너무 많이 닮았다.
나도 주님을 만났다. 지리산 피아골 밀알선교단 수련회에서 그루터기 선교회 조성범 목사님께서 이런 제안을 하셨다. 요한복음 1:12절에 자신의 이름을 넣어서 읽으라고 하셨다.
“영접하는 ‘길우’, 곧 그 이름을 믿는 ‘길우’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여기까지 읽었는데 뜨거운 감동과 기쁨이 하늘로부터 임했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한 수련회였다. 그때 하나님께서 나만을 사랑하시는 것 같았다. 그냥 기쁨이 아니었다. 샘솟는 기쁨이었다. ‘만족’이란 단어를 실감했다. 예수님 한 분만 있으면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는 ‘참 만족‘을 경험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나의 만족의 목록은 다른 것들로 채워졌다. 더 좋은 주거환경이 필요했다. 자녀들의 성공, 세상에는 가지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았다. 어느 새, 나그네의 삶을 버리고 정착민의 삶을 꿈꾸고 있었다.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본향을 잃어버리고 이곳에서 만족을 찾고 있었다.
나라가 바뀌고 왕들이 바뀌었지만 변함없으신 한 분이 계신다. 내 만족의 목록이 바뀌었지만 영원토록 그 자리에 계셨다. 주님이시다.
나는 오늘 다메섹으로 돌아가 그 자리에 서있다. 넓은 강 힛데겔 강 언덕에 다시 무릎을 꿇는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염려하는 나와는 너무도 다른 믿음의 용사 다니엘을 만나시던 그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힛데겔 강가로 나아갔다. 그리고 엎드린다.
눈물이 앞을 가리고 하늘로부터 위로가 임했다. 오죽하셨으면 머리털을 세시는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하셨을까?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다 안다. 네 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