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8일 화요일
다니엘 6:19-28
“죽음, 사자굴”
다니엘이 뜻을 정하고 60년이 넘도록 하나님 앞에서 살아온 시간들은 오늘을 위한 훈련이었다. 그는 실전에서 하나님을 온 몸으로 증거 하였다. 그는 바벨론 땅에 세워진 살아있는 교회였고 선교사였다. 그는 자신의 생명을 드려 증인된 삶을 입증하였다.
뻔히 자신을 잡으려고 놓은 덫이었지만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창문을 열었다. 예루살렘을 향하여 무릎을 꿇었을 때, 그는 다시 살고자 하지 않았다. 그의 창문은 하늘과 맞닿아 있었다. 애국의 마음이었고, 비장한 마음이었다. 그리고 지난 날 자신과 함께 하신 하나님을 신뢰하였다.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지 않았다. 그는 다리오 왕에게 구하지 않았다. 하나님께만 탄원하였다. 살려달라고 기도하기에 앞서 그는 오히려 감사하였다.
오늘까지 인도하신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그리고 앞으로 선하게 인도하심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미리감사’를 드린다.
뻔히 죽음이 눈앞에 있었음에도 감사할 수 있었던 큰 힘은 ‘전에 하던 대로’ 습관을 쫓아 하나님께 나아간 기도의 힘이었다. 60여 년 동안 늘 기도하였던 그대로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갔다.
우리는 형통한 자가 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오늘 다니엘은 사자굴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만 했다. 피할 수 없는 길이다. 피해서도 안 되는 길이다. 좁은 길이다.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네가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들에게서 능히 너를 구원하셨느냐” 다니엘 6:20
다리오 왕은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그리고 이른 새벽에 급히 사자 굴로 달려갔다. 그는 슬피 소리를 질렀다. 그는 들어왔던 살아계신 하나님의 이름을 외쳤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졸며 주무시지 않으신다. 다리오 왕이 사자 굴로 달려갔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미 다니엘과 함께 사자 굴에 함께 계셨다. 다리오 왕이 슬퍼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미 다니엘을 지키고 보호하셨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시다.
성도의 삶 역시 이와 같다. 우리는 ‘죽음’이라는 사자 굴로 던져진 자들이다. 시기만 다를 뿐이지 어느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길이다. 그러나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되신 주님께서 우리를 죽음의 사자 굴에서 능히 건져내신다. 주님의 부활의 아침을 기억하는 이것이 믿음이다.
사자 굴을 통과한 다니엘을 통해 고레스 왕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났다. 느부갓네살 왕에 이어 다리오 왕 역시 조서를 내려 하나님을 높였다. 이방인의 입에서 놀라운 신앙고백이 흘러나온 것이다.
오늘도 세상은 죽음이라는 덫에서 발버둥 치며 살아가고 있다. 아니 죽어가고 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성도 모두에게는 부활이라는 신약이 손에 들려져있다. 이 복음을 전하기만 하면 죽지 않고, 멸망 받지 않고, 영원히 살길이 있는데 죽어가는 자들을 외면한다면 이것보다 더 큰 죄는 없을 것이다.
하물며 세상도 ‘선한 사마리아인’이라는 법이 있는데 죽어가는 이웃을 나 몰라라 하며 살아간다면 하늘 법정에 서는 그날 할 말 없는 인생이 되고 말 것이다.
다니엘의 기도는 세상을 향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 하는 능력이었다. 주님 앞에 다시 서는 날, 할 말 있는 인생이 되기 위하여 다니엘이 되기를 원한다.
다니엘이 되기 위해 기도를 습관이라 쓰고 훈련이라고 읽으며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