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26일 목요일
다니엘 3:8-18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하루아침에 바벨론을 관할하는 총독들이 되었다. 더구나 기수를 파괴한 파격적인 인사였다. 다니엘의 꿈 해석을 통하여 뛰어난 예지 능력과 지혜를 알아본 느부갓네살 왕은 다니엘을 제국의 2인자로 발탁하였다. 다니엘의 요청에 따라 함께 뜻을 정하였던 세 친구를 도를 관장하는 방백으로 삼게 하였다. 이러한 인사정책은 제국을 건설하고 유지하고자 했던 왕의 리더십에서 나왔다.
그들의 수직상승을 못마땅해 하던 자들이 있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고, 곳곳에서 질시의 눈초리가 번뜩였다. 그들은 더구나 이방인들이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을 끌어 내리려는 음모가 진행되고 있었을 그때, 금 신상 참배 건이 터져 나온 것이다.
그들은 확고한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동시다발적으로 먼 거리로 흩어져 있는 그들의 동태를 왕에게 보고 하였다. 그러므로 이것은 불쑥 튀어나온 사건이 아니었다. 저들을 위기로 몰아넣기 위한 그물망처럼 가동된 조직적인 음모였다.
“이제 몇 유다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왕이 세워 바벨론 지방을 다스리게 하신 자 이거늘 왕이여 이 사람들이 왕을 높이지 아니하며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아니하며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나이다” 다니엘 3:12
사단의 공격이었다. 하와에게 다가간 뱀의 유혹과 일치했다. 하와를 향해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라며 부정적인 질문을 던진다. 순간 하와는 모든 동산의 열매를 먹으라고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린다. 단 하나의 부정에 빠지자 만지지도 말라 그리고 죽을까 하노라고 살을 덧붙여 대답한다. ‘정녕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망각한 것이다.
오늘 왕을 높이지 않았다고 했다. 넌지시 다가간 뱀의 유혹과 동일한 수법이었다. 왕을 이용해 정적을 죽이려는 음모였다.
말 한 마디에 생사여탈권을 가진 왕이었다. 그가 곧 법인 시대였다. 왕이 아끼고 있는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였지만 자신이 한 번 뱉은 말 때문에 풀무불에 던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자, 그들에게 다시 기회를 주며 회유하려고 했다.
“이제라도 너희가 준비하였다가 나팔과 비파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누구이겠느냐 하니” 다니엘 3:15
느부갓네살 왕은 자신의 입술로 고백했던 하나님을 잊어버렸다. 번민에서 벗어나자 옛날로 돌아갔다. 이런 이중적인 시선은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내재되어 있다.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기도하였다.
‘이번만 해결해 주시면!’
그 다음 말은 상상에 맡기겠다.
그러나 뜻을 정한 자들의 삶은 달랐다.
위기의 시간이었다. 피할 길 없는 막다른 골목에서 저들의 신앙고백이 풀무불보다 더 밝은 빛으로 타올랐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다니엘 3:17-18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의 신앙이다. 좁은 길이다.
로마의 기독교 탄압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사자 앞에서 불 앞에서도 담대히 맞설 수 있었던 한 마디였다.
일제 강점기 신사참배 강요 앞에서 목숨을 걸고 신앙을 지킨 선배들 덕분에 오늘의 한국교회가 있음을 한 시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