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24일 화요일
다니엘 2:46-49
“왕이 엎드려”
인생 역전이란 말을 이런데 쓴다하겠다. 다니엘 앞에 바벨론 제국의 왕이 무릎을 꿇었다. 자신을 번민으로 몰아갔던 그 꿈의 실체가 벗겨지자 그는 탄식처럼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그도 알았다. 자신의 꿈을 해석할 사람이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연약함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려고 했다.
단 1%의 가능성도 없는 꿈 해석을 요구하면서까지 자신의 무능함을 권력으로 감추려고 했던 나한 한 인간이었다. 그는 이 일을 통해 고백했다. 속절없이 무너지는 자신을 지탱하기 위해 무릎을 꿇은 것이다.
아마도 다니엘은 이 순간 지난 삼년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을 것이다. 뜻을 정한 날로부터 먹는 것 입는 것 그리고 모든 일이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시간표에 맞추어져 있었다. 그러나 자신들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 아무것도 모른 채 나아갔다. 세상이란 안개 속을 오로지 믿음이라는 나침반을 바라보며 걸어갔다. 그 나침반이 바로 ‘뜻을 정하여’였다.
다니엘의 삶은 잊혀 진 지난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에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는 현실이다. 우리 역시 ‘내일 일을 난 몰라요’를 노래했던 안이숙 사모의 고백처럼 하루하루 살아가는 인생들이다.
어린 소년이 망국의 한을 품고 포로생활 속에서도 결코 놓치지 않았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었다. 우리도 이 일을 위해 먼저 뜻을 정하는 일부터 서둘러 시작해야한다.
결코 흔들리지 않는 목표이기에 현재의 시간이 어려움과 질곡의 구렁텅이라 할지라도 주님을 향한 시선을 떼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떠한 난관도 헤쳐 나갈 수 있다. 아니 헤쳐 나가도록 일으켜 세우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느부갓네살 왕은 비록 포로의 신분이었지만 다니엘의 비범함을 보았다. 그를 바벨론의 제2인자로 발탁한다. 그리고 다니엘의 요청으로 세 친구 역시 제국의 각 도를 관장하는 관리로서 세운다.
巨山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연일 신문 지상을 오르내리는 한 인간에 대한 평가를 바라보면서 인간은 관 뚜껑을 닫을 때, 비로소 내릴 수 있다는 말을 실감한다. 독재에 항거하며 대한민국 문민정부 시대를 이끌어 낸 큰 공로가 있음에도 IMF라는 암초에 좌초된 채, 저평가 되어왔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정치계를 이끌어가는 수많은 정치인들이 그를 통해 입문했다는 사실이 새롭게 조명되면서 그의 포용의 정치가 빛을 발하고 있다. 그의 공과는 차치하고서라도 분명한 것은 한국 정치사의 한 획을 긋는 정치인이었음을 누구도 부인 할 수 없을 것이다.
느부갓네살이 그랬다.
자신의 꿈을 해석하지 못하는 자들을 죽음으로 몰아갔던 폭군이었다. 어쩌면 자신의 자리를 넘볼 수 있는 잠재적 정적으로 볼 수도 있었을 다니엘을 단숨에 바벨론 제국의 제2인자로 발탁한다. 여기서 리더십의 자세를 배운다.
오늘 나는 거대한 여리고성처럼 굳게 닫힌 논현동 땅을 바라본다. 1%의 가능성도 없는 것처럼 향락과 사치와 방종이 난무하는 땅에서 복음을 들고 거리로 나아가기로 뜻을 정한다. 무모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노방전도 축호전도는 낡은 방법이라고 비웃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손 놓고 마냥 기다릴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쓰나미처럼 죽어가고 있는 이 땅의 4,000만의 동포를 바라보면서 가슴을 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인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의 미래를 비관하는 사단의 궤계에 맞서 복음의 깃발을 높이 들어야 한다. 제 2의 부흥을 위해 한국 교회가 깨어나야만 한다. 땅 끝을 바라보는 것과 함께 내게 맡겨진 이 땅의 예루살렘에서 죽어가고 있는 4,000만 명의 영혼들을 바라보자. 그리고 애통의 눈물을 드리자.
그리고 기도한다.
“영혼을 향한 타는 목마름을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