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하나님의 사람아
오늘은 상하이 한인연합교회 엄기영 목사님의 말씀을 옮깁니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디모데전서 6:11#12336;12
무엇보다도 더 하나님을 사랑하며 한인교회를 건강하고 섬기시는 엄목사님을 초청하여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을 듣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어제 결론을 내지 못하여서 오늘 말씀드리지만 우리가 중국에서 교회를 지은 이야기를 하지 못하였다,
우리가 교회를 짓지 못하게 하면 우리가 아는 미국 등에 종교탄압으로 여론을 시키겠다고 하였으나 예배당은 신축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런 저런 고민을 한 중국 정부인 통전부에서 임시종교 활동 장소로 허가를 내 주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중국에 한인연합교회가 설립되었습니다.
중국에는 2종류의 교회가 있는데 허가를 받은 삼자교회와 허가를 받지 않는 가정교회가 있습니다.
그곳이 개발이 되어 철거되었고 1,200명 정도가 모여 예배를 드리는 장소로 이전을 하였습니다.
미국 선교사들도 교회를 지으려고 하자 허가를 내주지 않으려고 한국 사람이 믿는 하나님과 다르지 안 다고 따져서 내 주었습니다.
인생은 길어야 100년 정도 대개 80#12336;90년 정도 삽니다.
이 짧다고 하면 짧은 시간 동안에 무엇을 위하여 살고 싶습니까?
사람은 존경하는 사람을 따르게 되며 누구누구의 사람이라고 말을 합니다.
문재인, 이광재는 노무현의 사람이다. 라고 말을 합니다.
기업가 중에는 정주영, 이건희의 사람들이라고 말을 합니다.
사람이 10년을 좋게 지내기가 어려우며 기업도 수명이 100년 가는 기업이 많지 않습니다,
우리는 가장 소중한 것을 위해 우리의 목숨까지도 버릴 각오로 삽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불리워지며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저의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큰 아들인 형님이 일본선교사로 가서 돌아올 수가 없어서 제가 상주를 했습니다.
그런데 묘비에 쓸 말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하면 떠오르는 것이 함경도에서 피난 오셔서 종 갓 난 새(끼)<종이 처음 난 새끼?>와 사기를 전문적으로 당하시는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아니면 왔노라. 싸웠노라 이겼노라고 쓸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말을 새겨 넣었습니다.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요한계시록 21:7 ??)
그 때 내가 아는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를 생각하였습니다.
아들딸들이 우리아빠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믿음을 지키다가 이곳에 와 있다는 말을 들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동물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깁니다.
과연 내 이름은 어떻게 남길 것이며 그러기 위해 내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디모데는 오늘 말씀에서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를 위하여 두 가지를 말하고 있는데 앞선 3#12336;6절까지 에서는 다른 교훈을 피하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디모데가 목회할 당시에는 그곳에 헬라 철학이 융성했고 웅변적으로 이야기 하는 사람이 많았으며 논리적으로 싸움을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이 모든 일에 교만한 마음을 가져서 하기 때문입니다.
7#12336;10절에서는 돈을 사랑하지 말라고 경계를 하고 있습니다.
부를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근원이 된다고 말을 합니다.
2015년 10월 21일 오늘 아침에 피해야 할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첫째로 포스트모던이즘에 반하는 사고로 살아야 합니다.
절대적 진리를 부인하며 사는 것이 포스트모던이즘입니다.
과거에는 없었던 남자가 자라나서 나중에 남자하고 결혼할 거야 등으로 나타납니다.
다양성은 좋은 일이지만 절대적인 진리는 사수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에게만 구원이 있다고 고리타분하게 생각을 합니다.
경계와 벽이 무너지는 것은 곤란한 일이 발생합니다.
현재 시대가 통합적 사고를 요구한다고 하지만 절대적인 진리는 포기할 수 없습니다.
프로그마티즘 즉 실용주의 즉 돈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서 황금만능주의 배금주의가 나옵니다.
이러한 것들로부터 인간상실, 인간소외 등이 나옵니다.
이것이 가인의 문화이며 인간이 범죄한 이후에 인간의 노력으로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창세기 3:18)
오늘날 우리에게는 아브라함 언약을 계승자로 하나님으로 우리의 힘과 지혜를 삼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파워를 쫓아가지만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움으로 살아갑니다.
세상 사람들은 끊임없이 남을 이기기 위하여 교육하고 훈련을 합니다.
<마태복음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나님이 인생의 모든 파워되심을 믿고 주님의 돌보심을 바라며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마침내 영광스러운 자리로 인도하시리라 믿습니다.
에덴동산에는 참새도 독수리도 새로서 각자의 길을 가면 되는 것입니다.
독수리는 독수리대로 참새는 참새대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됩니다.
공동체를 바라보게 됩니다.
퍼즐로 잘 맞추어져 있다고 생각을 하게 합니다.
<고린도전서 12:26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모든 만물을 우열이 아니라 제 역할이 있을 따름입니다.
부자와 많이 배운 사람에게 관심을 더 가지지 말고 비교하지 말아야 합니다.
속지 마십시오, 분명히 전체를 이루는 한 부분입니다.
세상의 시스템 안에서 힘들 수도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듀나미스(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세상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합니다.
천당이라는 말이 없었는데 하늘나라를 번역한 것이 천당입니다.
유대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부르지도 않았습니다.
아도나이로 하늘과 땅과 (누가복음 15:18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로 하늘이야기 하면 하나님으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원래 나라라는 것이 통치적인 개념인데 한문으로 번역을 하다 보니 영토적 개념으로 바뀌었습니다.
우리는 천국을 이 땅에서부터 천국을 만들어 가며 살아가야 합니다.
신앙의 문제점인 십일조를 강조하다 보니 십구조는 어떻게 할 것입니까?
가정과 직장에서 삶이 일치되지 않는 것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기도하여야 합니다.
배부른 돼지 보다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지 않을까요?
세상에는 영원한 것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 인간의 영혼입니다.
영원한 것을 위하여 사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는 것은 한 순간 싸움이 아닌 지속적인 싸움을 하라고 하십니다.
순종과 불순종, 주님과 나 누구를 따르며 살겠습니까?
옛 성품을 제거하기 위하여 날마다 의로운 싸움을 해야 합니다.
<출애굽기 33:11 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그 수종자 눈의 아들 청년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내가 새벽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시편 119:147)
승리의 비결은 하나님 안에 거하면서 말씀과 기도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기대하며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사람으로 살아가십시오.
가시밭길 일 수도 있지만 결국에는 승리하게 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 없이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