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21일 수요일
요한일서 4:7-12
“사랑하자”
사도 요한은 오늘 본문 여섯 절에 사랑이란 낱말을 무려 열세 번을 언급하고 있다. 내외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성도들에게 그만큼 당시 사랑은 너무도 중요하고 절실한 ‘동사’였다.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도 사랑은 유행가에 빼놓을 수 없는 가사처럼 꼭 필요한 단어이다. 하지만 먹으면 먹을수록 갈증이 더해지는 바닷물처럼 구하면 구할수록 사랑의 목마름에 시달리고 있다.
‘사람이 빵만으로 살 수 없다’는 말처럼 꼭 그 빈자리에 있어야할 사랑의 결핍 때문에 굶주린 인생들이 소망이란 단어를 잃어버린 채 죽어가고 있다.
요한은 사랑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을 소개하신다.
사랑의 기원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먼저 사랑하셨다’로 출발했다. 사도 바울은 이 사랑을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8
사랑이란 이렇게 하는 것이라는 시범을 보이셨다. 자신의 정체를 폭로하셨다. 불타는 가시떨기 나무 아래서 ‘당신은 누구이십니까?’라는 모세의 질문에 ‘나는 나다’라고 말씀하신 그 분께서 ‘나는 사랑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십자가이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요일 4:10
무수하게 드려진 번제와 화목제물이 예수님의 그림자였다. 골고다는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번제단이었다. 마이너스 인생들을 플러스 인생으로 바꾼 허니문이었다.
하나님의 본질은 사랑이시다. 그 사랑에 잠긴 사람만이 진정한 사랑을 하게 된다.
주님을 처음 만난 날, 그냥 좋았다.
주님께서 내 손을 잡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행복했다.
이 사실을 모르는 자들이 너무도 불쌍해보였다. 가슴에는 사랑의 열정으로 타올랐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다. 그것은 나의 사랑이 아니었다. 주님의 마음이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감정에 너무 많이 치우쳐 상대방을 배려하지 못했다. 미숙한 사랑이었다.
이제 조금은 식어버린 그 자리에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채워졌다. 그리고 사랑은 동사라는 말처럼 의지적으로 사랑을 하게 되었다. 조금은 메마른 듯, 하지만 지금이야말로 제대로 된 사랑을 할 때가 된 것이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일 4:8
사랑 하니까 보이는 나라 하나님 나라이다. 이제 성도에게 있어서 사랑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목말라 죽어가 있는 인생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흐르게 하는 은혜의 통로가 되기를 소망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요일 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