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19일 월요일
요한일서 3:11-24
“사랑하는 자들에게 위임하신 백지수표”
구십 노인네였다. 그가 인생의 끝자락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그리고 그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사랑하라!’
진정한 사랑은 입술만이 아니었다. 실제적 삶이었다. 손과 발이 움직여야하는 동사였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요일 3:18
사랑의 지속성과 불변성을 사도 바울은 이처럼 표현하셨다.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고전 13:80
하나님 나라의 가치는 영원함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랑에 있다.
미움과 함께 영원한 곳은 지옥이기 때문이다. 에덴동산이 그리운 것은 그곳에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완벽하게 갖추어진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동산의 주인이신 사랑의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와 함께 거닐 던 곳이기 때문이다.
가난하던 시절 열심히 저축해서 근사한 집도 장만하고 먹고 살만하니까 조강지처를 버리고 딴살림을 차린 가정이 있다면, 그곳을 누가 행복한 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요한계시록에서 보여준 정금으로 만들어진 도로와 보석으로 치장된 집이 우리에게 행복을 주는 것이 아니라 나를 죽도록 사랑하신 하나님께서 그곳에 계시기 때문에 행복한 곳이라는 말이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증거를 제시하신다. 바로 이웃을 내 몸과 갈이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내게 이와 같은 사랑이 없다면 심각하게 고민하고 기도할일이다.
하나님께서는 공짜가 없으시다. 사랑하는 자들에게 보너스를 주신다.
일찍이 요한복음에서 이 보너스의 원리를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한복음 15:7
오늘도 동일한 목소리로 말씀하신다.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요일 3:21-22
이 말씀은 사랑하는 자들에게 백지수표를 위임하셨다는 뜻이다.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라는 단어는 제한의 폭이 없는 무한대를 뜻한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기도 응답의 약속이시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로마서 8:26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로마서 8:34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은 우리가 빌 바를 알지 못할 때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시는 성령님을 아는 자들이다. 또한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는 주님을 만난 자들이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능력은 주님과 성령께서 연약한 나를 위하여 기도하신다는 것에 기초하고 있음을 한 시도 잊어서는 안 될 일이다. 이것이 은혜이다.
나를 향하여 기도하신다는 또 다른 말은 하나님께서 졸며 주무시지도 않으시고 자기 눈동자 같이 지키신다는 말씀이다. 주님의 기도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신명기 32:12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라.” 시편 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