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의 기승전결
오늘은 부산 포도원 교회 김문훈 목사님의 전도의 기승전결을 옮깁니다.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 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누가복음 19:1#12336;10)
인생을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이라 하였던가?
그 좋은 권련도 10년이 더 못가고 꽃도 열흘 붉은 꽃은 없습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난 것은 우연이 아니었으며 일생일대의 기적의 날 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아무런 쓸데없는 날이 어떤 사람에게는 의미심장한 날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제 인생은 3분의 목사님으로부터 변화되었습니다.
1절에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예수님은 변화산상에 머무르지 않으시고 이 어지럽고 험난한 세상에 오셨습니다.
승리의 면류관은 세상에서만이 얻을 자격을 가질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하와, 에서. 아합 등은 헛빵으로 살았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뜨뜻미지근하면 이렇게 됩니다.
성신을 거두지 마옵소서라고 하는데 한 마디로 뻥이요 입니다.
여리고로 지나가신 것이 은혜가 됩니다.
축복과 저주가 왔다리 갔다리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지나가지만 삭개오에게는 결정적인 순간이 온 것입니다,
인생의 찬스를 어떤 사람은 그냥 스치고 보내지만 삭개오는 붙잡았습니다.
하나님은 그 땅에서 사람을 들어 쓰십니다.
하나님은 무엇보다 더 사람을 중요시합니다.
뼈대 있는 집안은 아버지 성함이 먼저 나오고 이름이 나옵니다.
디셋사람 엘리야 가문도 별 볼일 없는 농사꾼이었습니다.
아합 왕 때 생명의 위협을 느껴서 이세별의 문자 하나를 받고 무서워서 까무러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로뎀나무 밑에 앉아서 하나님에게 죽여주옵소서! 하였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떡 한 조각 물 한 모금으로 생기를 회복시키시더니 나중에는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으로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 나라의 국보급 대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신토불이 여리고에서 삭개오를 즉 그 땅에서 사는 사람을 들어서 사용하시는 분이십니다.
우스 사람 욥, 베다니 에에 사는 나사로(잔치 잔치 벌린 사람), 아리마대 사람 요셉, 수원에 거시기, 부산에 모시기 등을 사용하여 일을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쓰임을 받고 하나님의 일을 할 때가 가장 즐겁습니다.
메뚜기도 한철인데 그 시대에 잘하여야 합니다.
삭개오는 세리장이며 부자였습니다.
세리장은 요즈음 말로 신이 내린 직장의 장이었습니다.
나는 기복주의는 아니지만 동사무소에서 배급받는 것보다는 베풀며 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죄인이었으나 그도 아브라함의 자손이었습니다.
세무소장 정도 하려면 눈에 불을 켜고 살았을 것입니다.
회사에서 근심하고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우리 아버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험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얼마나 고충이 많겠습니까?
현대인들은 거의 다가 다중인격자들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뻥이요 빛 좋은 개살구입니다.
부자였다는 말은 치사빤스의 삶을 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뻥치는 대로 백성들의 피를 빨아먹고 살았습니다.
거머리 같은 놈이었으며 매국노였습니다.
그 사람을 누가 존경하겠습니까?
이러한 인간도 아브라함 자손으로 여겨주시는 분이 하나님시시며 복음이다.
삭개오는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났겠습니까?
예수님은 이런 삭개오에게 과거도 묻지 않고 찾지도 않으셨습니다.
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셨습니다.
삭개오는 느낌 아니까? 이 분은 뭐가 다르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진솔하고 순수하시며 무한하신 사랑에 녹아내렸습니다.
양파 껍질처럼 벗겨지는 사랑을 느꼈습니다.
예수님은 쓰레기 같은 사람들을 구하려 오셨습니다.
그 사람을 아브라함으로 자손으로 불러주십니다.
아브라함을 대표로 부르시고 땅의 축복과 자손의 축복을 주시고 들어가도 나가도 복을 주셨으며 복의 근원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축복을 주십니다.
<갈라디아서 3:29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주님께서는 경건치 안는 자 값어치 없는 자를 들어 사용하십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님을 믿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자 세마포 옷을 준비하여 장례를 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나도 할 수 있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것이 복음입니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한복음 10:10)
삭개오의 별명은 4가지 이었음을 늘 기억하여야 합니다.
<저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3절)
하나님을 찾으려는 DNA를 가졌습니다.
<이사야 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