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16일 금요일
요한일서 2:28-3:3
“그의 안에 거하라”
“자녀들아 이제 그의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바 되면 그가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요한일서 2:28
‘그가 강림하실 때에’
다시 오실 예수님을 언급하셨다. 그리고 그의 안에 거할 것을 명령하신다. 새로운 방주였다. 창세기부터 일관되게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였다. 주님께서 자신의 육체를 허무셔서 만드신 새로운 방주 ‘구원호’이다. 이 땅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만’이 승선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는 점이 주목할 점이다.
적그리스도가 창궐하는 때 사도 요한이 기록한 요한일서처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부르실 때, 그 말씀의 배경이 가장 많이 이적을 행했음에도 회개하지 않는 고을들을 책망하시면서 말씀 하신 것과 일맥상통한다 하겠다.
구원호에 승선한 자들의 특징은 호칭이 형제요 자매라는 점이다. 한 가족을 의미한다. 예수의 피로 한 핏줄이 된 자들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구원 받은 단 하나의 가정이다.
그러므로 ‘거하라’는 단어에 담긴 뜻은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시다. 이것은 자녀로 부르시는 한량없는 은혜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 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요한일서 3:2
‘거한다는 것’은 단순한 동거의 의미를 넘어서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함께 사는 것이다. 사도 요한은 그 분의 품에 안겨서 예수님의 체취를 느껴본 사람이다. 그 분이 돌아가실 때, 슬픔 속에 도망쳐 그 자리를 벗어난 아픔이 있기도 했다. 다시 살아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제일 먼저 무덤을 향하여 달음질 하였다.
그가 거하라고 명령하는 구체적인 내용은 하나 됨이다.
고린도전서 5:17절에서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 선언하신 사도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20에서 새로운 피조물 새 창조의 세계를 말씀하셨다.
이러한 소망을 가진 자만이 오늘 3절에서 말씀하신 바처럼 행동할 수 있다고 하신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요한일서 3:3
주를 향한 소망을 붙잡는다. 그리고 씩씩하게 좁은 길을 걸어간다.